(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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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인과의 법칙'도 '시간의 흐름'도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인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은 많고도 많다. 절대적 시간은 없으며 질량과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 시간도 공간도 상대적이므로 개념적으로는 시간이 영零으로 축소되거나, 공간이 영零으로 축소될 수 있다. 시간이 없는 세상, 공간이 없는 세계도 가정할 수 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우주는 한 점에서 출발해 순간 우주가 되었다. 인간도 탄생의 그 순간 과거, 현재, 미래로 퍼져나갔다.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며 살아간다. 과거, 현재, 미래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의사결정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인간은 한 덩이로 산다. 살아온 날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대로 변화하며 살아있다. 씨앗은 씨앗으로 살고, 새싹은 새싹대로 살고, 나무는 나무대로 산다. 모두 한 몸이다. 어느 날 나무가 죽으면 씨앗도, 새싹도 모두 사라져 한 덩이로 죽는다. 새싹이 죽으면 씨앗도 나무도 함께 죽는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사라진다.
인간은 언어로 훈련되고, 언어로 생각한다. 삶을 인과적으로 의식하니 언어도, 생각도 인과적이다. 삶을 한 덩어리로 인식한다면 생각도 한 덩어리로 할 것이고, 언어도 한 덩어리 언어로, 한 덩어리 글자를 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이미 알아버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자유의지일까. 줄거리를 알고 있는 연극에 감동하고, 다시 본 영화에 다시 눈물이 흐른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정해진 미래를 받아들이면 서운할 것은 없다. 여전히 감동적이고, 애틋하다. 죽음이 모두의 앞에 있지만, 언제나 삶은 감동적이다.
빛은 정의다. 빛은 불경을 허용하지 않는다. 빛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다. 조금 더 느린 빛, 조금 더 빠른 빛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주만물은 모두 빛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설명되지 않으면 종속변수를 의심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페르마의 법칙'도 공간의 속성과 왜곡을 말해야 한다. 빛을 의심할 순 없는 노릇이다. 빛이 물질이자 질량이고, 에너지이며, 시간이자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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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가 있다. 당신은 빛의 굴절을 인과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만 익숙해 있어. 수면에 도달하는 것은 원인이고, 그 방향이 바뀌는 것은 결과라는 식이지. 페르마의 원리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빛의 행동을 목표 지향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야. 빛은 이전의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어.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세월의 책'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다고 치자. 이 여자는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티슈처럼 얇따란 책장을 넘긴다. 자신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을 기록한 대목을 찾아낸 그녀는 다음 대목으로 넘어간다. 그곳에는 그날 그녀가 나중에 하게 될 일들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녀가 책에서 읽은 정보를 바탕으로 경주마인 '될 대로 되라'에 100달러를 걸고 스무 배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녀는 경마에 돈을 걸지 않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월의 책'은 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