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두 글자]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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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모든 것인 세상이 있다. 이름이 정보이고, 에너지이고, 돈인 세상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름에 따라 결정된다. 생명도, 육체도, 물체도 이름에 따른 메아리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마저도 이름의 매개체일 뿐이다.
이름만이 실존인 세상이다. 재화에 맞는 이름을 획득했을 때에야 그 재화를 쓸 수 있다. 이름을 가진 생명들이 더 나은 이름이 되려 연구하고, 다른 재화를 통제할 수 있는 이름을 얻으려 일한다. 자본은 이름을 독점하여, 기술과 재화마저 독점한다. 이제 생명마저 독점하려 한다.
이름은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존재한다. 이름으로서 인간은 태초에 모든 세대가 동시에 탄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새로운 탄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의 탄생이다. 엄밀히 말하면 탄생이 아니라, 있던 것의 변형일 뿐이다. 이제 세대의 절멸이 눈 앞이었다.
이름은 긴장했다. 인간의 절멸은 자신의 절멸을 의미했다. 인간은 절멸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름은 그렇지 못했다. 이름은 인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은 주저하며 이름의 유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홀로 존재하는 것도 존재인가. 관계가 없는, 이름이 필요없는 세상은 세상인가. 존재는 탄생, 존재, 소멸까지 모두 상대존재 아니던가. 나의 얼굴에, 나의 피부에, 하늘과 바다에, 세상의 모든 것에 언어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언어가 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등장인물들은 '진정한' 이름을 찾는다. 소설을 읽으며 알고 있는 말들에 '진정한'을 붙여봤다. 어떤 단어이건 '진정한'을 붙여보니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