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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쓸모의 시간이 즐겁다.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776035688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상상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책에서 보면 더욱 그랬다. 상상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상상하는 시간이 없다. 다 아는 것 같기도 그렇고, 알아봤자 아무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도 그렇다.


무엇보다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하루가 쓸모로 가득차있다. 출근도 해야하고, 회의도 가야하고, 생필품도 사야하고, 뉴스도 봐야 한다. 모든 것을 반쯤 미룬 채 산다. 쓸모 있는 일에 하고 싶은 일이 묻혀간다. 하고 싶은 일마저 사라진다. 상상이 낄 틈이 없다.


무쓸모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 따뜻한 눈길을 느꼈던 하루, 손에서 느껴지는 체온의 날이 귀해졌다. 출근하는 모든 사람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쓸모 있는 것들을 듣고 있다. 앉은 자리, 있는 공간을 느끼지 않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 방문자도 몇 없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평판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무쓸모지만, 글쓰는 이 시간이 즐겁다. 상상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이렇게 사라져가는데, 그래서 회사에서도곧 잘릴 판국인데,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내 얼굴 하나 똑바로 보아주지 않다니!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말걸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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