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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결국 끝나는 곳이 있다.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823670574



4년 전 오늘이다. 사무실 사람들이 "이번에도 혼자 여행가세요?"라고 물어본다. 나는 웃으며 "매달 간다고 그랬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느껴지는 부러운 눈빛. 하루 휴가로 낭만적인 사람이 되었다.



운전하면서 오디오북을 들으면 기차여행을 하듯 한 껏 여유로워진다. 목적도 목적지도 없는 운전이니 더욱 편안하다. 권희철 평론가가 읽어주는 '둔황의 사랑'과 강섬이 읽어주는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들었다. 군산 선유도에 도착했다.



땅의 끝에서 바다는 시작된다. 한 점의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땅도, 영원할 것만 하던 땅도 결국 끝나는 곳이 있다. 거기서 멈춘다. 바다를 가만히 본다. 파도소리가 들린다. 젖은 모래를 밟아본다. 모래섞인 단단한 갯벌엔 파도의 모양이 물결로 남아 있다. 썰물에도 고여 있는 바닷물에 이것저것이 있다. 손을 집어 넣으니 차갑다. 불가사리가 있어 건드려보니 죽었다. 바다냄새가 났다.



섬에 있는 산은 낮지만 조망이 좋다. 20분만 올라가도 탁트인 바다다. 아무도 올라가지 않으니 산 속에 나 혼자다. 진달래가 곳곳에 보인다. 모든 감각이 자연을 느낀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발에 밀리는 흙무더기 소리가 들린다. 작은 돌멩이, 나무 뿌리가 발바닥으로 전해진다. 바람의 결이 광대뼈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들린다.



도시에서는 그저 이동한다. 무언가 보고 들으며 이동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직장이,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많은 걸 다음으로 미룬다. 땅도 끝이 나는데, 직장과 삶도 끝난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다. 발에 밀리는 돌멩이, 발바닥의 감촉, 바람, 꽃봉오리, 숨소리, 심장소리. 미룰 수 없고, 미뤄선 안 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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