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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답답해 집을 나섰다. 터덜터덜 걷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났다. 잡음처럼 들렸지만 소리는 날카로웠다. 아줌마와 딸로 보이는 고등학생이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딸은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파란 니트의 아줌마는 시무룩해졌다. 아줌마는 몸을 돌리더니 노래하는 사람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얼굴이 보였다. 아는 사람인가. 얼굴이 힐끗힐끗 보였다. 가만히 근처로 갔다. 많이 변했지만 대학후배였다. 30년이 지났지만 후배도 나를 알아봤다. 그다지 반가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로 헤어지기는 뭐해서 전철역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커피와 과자를 먹으며 여러 얘기를 들었다.
많은 실패의 이야기가 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박사를 마치고, 박사 후 과정을 하면서 수많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았지만 제대로 되는 것은 없이 꾸역꾸역 시간만 흘러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동아리 얘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떠난 후 동아리엔 파국이 있었다. 그때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때는 젊었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되었던 시간이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들은 바도 없었다. 그저 듣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었다. 전해 들었지만, 처음 듣는 얘기지만 그때 그 순간들이 내 눈에 보였다. 이 방 저 방에서 토론하고, 편을 가르는 모습이 보였다. 후배의 이야기가 다시 들렸다. 후배는 삶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좀 더 너그러워져야겠다고 말했다. 후배와 헤어졌다. 생각해보니 전화번호도 받지 않았다. 조금은 쓸쓸한 만남이었다.
나는 등산로 초입에 서 있었다.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싶었다. 조용해 보이는 막걸리집에 들어갔다. 등산 갔다 온 어르신들이 들어오더니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옛날 얘기들이 가득 채워졌다. 막걸리 한 병을 마시며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몽롱했지만 쓸쓸했다. 술값을 내고 좁디좁은 2층 계단을 내려갔다. 시간은 가고 삶은 계속 소모되고 있었다.
그렇게 꿈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