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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 강의가 잡혔다. 경주와 제주다. 1박2일 여행이라 생각하니 설레었다. 비행기편도 찾아보고, 잘 곳도 정하고, 책도 몇 권 챙겼다.
수서-경주 : 기차
경주-경주문화재단 : 쏘카 렌트
경주-포항 : 쏘카 이동 반납
포항-제주 : 에어부산 3만원
제주이동 : 쏘카 렌트 (평일 1박2일 최신 쏘나타 렌트비 10,000원이다.)
숙박 : 서귀포 in stay
강의 : 제주시 오션 스위츠 호텔
제주-서울 : 제주항공 3만원
경주는 6학년때 처음 가봤다. 그땐 석굴암에 유리벽이 없었다. 30대 어느 날 스트라이다 타고 경주를 한바퀴 돌았다. 어릴 땐 '화랑'이란 말이 참 흔했는데, 이젠 듣기 어려운 말이다. 그만큼 경주도 낡아가고 있었다.
경주문화재단 건물은 웅장했다. 지하층엔 예술인들이 각자의 공간을 차지하고 무언가 하고 있었다. 다들 살아간다. 자유롭게 무언가 하면서도, 무언가를 돈으로 바꾸는 기술이 있다는 얘기다. 나에겐 낯선 방식이다.
임직원 30명 정도가 강의를 들었다. 대표님이 제일 앞에 앉아 열심히 들었다. 임직원이 전체적으로 젊었고, 세련되었다. 눈이 초롱초롱한 사람이 많았다. 예술 속에 있으면 살아있는 감각으로 살게 되나 보다. 근처에서 밀면을 먹고 포항공항으로 갔다.
포항공항은 해군공항 같았다. 해군과 해병대 비행기가 쉼없이 위를 빙빙 돌았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읽겠다던 책은 짐만 되고 말았다.
서귀포 근처 추사 기념관에 갔다. 실록의 추사에 대한 평가가 마음이 아팠다. 똑똑하고 총명하고 판단도 빨랐으나 상대를 몰아붙여 적이 많았다. 추사의 오랜 귀양은 누구도 아닌 추사 스스로 불러온 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추사는 제주 부자 강도순의 집에 위리안치되었다. 부자라는 강도순 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추사는 8년넘게 제주 귀양살이를 했다. 추사관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작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다 이도저도 아닌 모양이 되어 보였다.
서귀포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작은 삼성급 호텔로 보였다. 호스트가 상당히 밝고 부지런했다. 삶의 힘이 느껴졌다. 짐을 풀고 올레 시장을 걷다 수제비를 먹었다 노부부가 아주 친절했다. 서귀포도 시들어가는 듯 보였다. 숙소에 돌아와 '부풀어진 맘과 꾸며진 말들'에 대해 썼다.
자는데 땀을 흘린건지 뭔가 축축했다. 아침에 깨어 씻으러 가는데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다. 침대에 와보니 베게에도, 침구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피곤해서 코피를 흘린 모양이다. 처음이어서 조금 겁났다. 프런트 호스트에게 말하니 건강 걱정해주시며 나를 따라왔다. 보더니 세탁비로 15000원 요청해서 바로 주었다. 난 5만원은 될 줄 알았다.
차를 끌고 남원, 표선 해안도로를 설렁설렁 달렸다. 정말 오랜만이다.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차도 없었다. 중간에 내려 잠깐잠깐 걷다 다시 탔다. 아는데가 없어 섭지코지에 들렀는데 완전히 망해있었다. 호젓한 모습의 교회는 이상하게 변한 상태로 오래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빈 땅에 리조트가 꽉 차서 한적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내가 보기엔 전체적으로 흉물이 되어버렸다.
근처에 빛의 벙커가 있엇다. 실제 벙커를 화면으로 구성한 전시관이었다. 화면도 좋았지만, 소리가 깔끔해 좋았다. 음악에 맞춰 화면이 움직였다. 익숙한 작품들이 영상이 되어 움직였다. 작품의 소품들이 커지고 작아지면서 작품이 섞였고, 작품끼리 섞였다. 음악이 흐르면 소품들이 자유를 얻었다.
오션스위츠 호텔에서 강의를 하고, 제주박물관에 갔다. 영상관이 좋았는데, 빛의 벙커를 보고와선지 감흥이 작았다.
부모님 사진에서만 봤던 용두암에 가보고 싶었다.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 듯 용두암만 덩그라니 있었다. 어릴 적 용두암 사진은 제주를 더 신비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용두암은 그대로일텐데, 나에겐 왠지 바래진 사진 같았다.
제주의 번화가라는 노형동으로 갔다. 상가는 가득했고, 사람도 천지였다. 인도는 없었고, 차선도 없었다. 주차까지 더해 골목은 엉망이었다. 제주에서 살라하면 살 수 있을까 싶었다.
기름을 넣고,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고 차를 반납했다. 9시 비행기였는데 거의 모든 비행기가 30분씩 연착했다. 10시 30분 김포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다음 날 아침 잠도 모라자는 것 같았다. 몸이 좋지 않았다. 결국 몸살이 났다. 금요일 면접이었는데 몸살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로 면접을 봤다. 떨어지면 다 무리한 일정탓이다.
그렇더라도 설레는 1박 2일 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