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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도 돈 벌러 가야지만, 시계는 밥 안 주면 안 간다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853714756



아침 서울구치소 주차장에 있었다. 책을 읽으려 했지만, 이런저런 해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찰거리는 이어졌는데, 시계를 보니 배터리가 낮았다.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밥 못 먹은 주인은 돈 벌러 가야하지만, 시계는 밥을 안 주면 안 간다.


내 시계는 세이코다. 2007년부터 세이코만 찼는데 이유는 딱 하나다. 싸다. 정확히는 싼 세이코만 찼다. 배터리도 갈고, 시계줄도 갈아가며 20년 가까이 썼다. 고친 값이 원래 시계값 보다 더 들었다.


작년에 다른 세이코로 바꿨다. 세이코가 1년에 한 번씩 등록고객 대상 할인판매를 한다. '올타꾸나'하며 100만원 쯤 하는 걸로 주문했다. 이름하여 '세이코 프레사지 GMT 오토매틱 spb223j1'이다. 시계는 잘 모르니 예뻐보이는 걸로 샀다. 오토매틱이라고 써 있으니 차고만 다니면 될 거였다. 혹했던 부분은 왠지 10배가 비싼 그랜드 세이코 눈송이 시계(SBGA211)랑 비슷했다는 점이다.


시계가 왔다. 생각보다 알이 컸고, 무거웠다. 예쁘니 다 용서되었다. 그런데 하루차고 다녔더니 시간이 안 맞는다. 이거 뭔가하고 이리저리 찾아보니 이틀에 한 번은 태엽을 감아야 했다. 이리하여 태엽감는 삶을 살게 되었다. 아침에 씻고 시계를 차면 습관적으로 시계 밥을 준다. 태엽을 돌릴 때마다 파워 게이지가 조금씩 차 오른다. 차에 기름을 넣는 느낌이다. 48시간이 가득이다. 가득차면 괜히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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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37ywiVlp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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