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점은 내 몸에 찍힌다.

(촉진하는 밤, 김소연)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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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선을 떠올리게 한다. 기다래진 선이 어디선가, 어느 순간 멈추며 '점'이 된다. 끝이다. 삶에서 많은 일어났다 끝이 난다. 부채꼴처럼 넓던 것들이 점점히 좁아지다 마침내 점이 되어 사라진다. 무언가는 끝이 되어 사라진다.


나는 몸으로 살아간다. 몸으로 생각하고, 몸뚱이만큼만 세상을 점거한다. 시작도 끝도 몸이 경험한다. 내 몸을 떠난 시작과 끝은 알 수 없고, 나에겐 무의미하다. 시작점과 끝점이 내 몸에 찍힌다. 검정에 다시 검정이 찍힌다. 두꺼운 검정이 되어간다. 점이지만 면적이 되어간다. 검정의 지대가 되어간다.


검정의 지대엔 감당했던 마음이, 어쩌지 못했던 내가, 지나버린 시간이 점이 여러 색깔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끝은 반복되어 검정으로 쌓여간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 무심히 끝나버리는 것들, 끝내고 싶지만 끝나지 않는 것들, 끝날 것 같으면서도 계속되는 것들이 검정의 지대에 떨어진다.


진정한 끝의 순간 물방울이 떨어질 것이다. 검정의 지대는 마침내 젖어들어 번져나갈 것이다. 색색으로 번져나가 마침내 삶의 소실점에 도착할 것이다.




'이미 내가 어둠이' 될 정도로 지극한 어둠에 들어서도 어둠에는 끝이 없다. 무엇이든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끝'이라는 말을 아무리 달고 살아도 끝은 계속 유예된다.


끝에서 끝이 아닌 것을 매번 체험해온 입장에서는 극단의 정서까지 포함하여 온갖 정서가 범벅된 '끝'을 단순히 점이나 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대로서 느낀다. 어떤 지대가 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도 다시 생겨나는 끝이 여력을 만들고 의지를 만들고 또 믿음을 만든다. 거대한 지대를 향해 가는 끝.


시간은 냉정하게도 시간을 견디는 자에게만 '시간으로부터 호위를 받을 수 있'고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촉진하는 밤 '해설', 시인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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