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구도 가사를 외우지 않는다.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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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노래 가사를 잘 외웠다. 지금은 아무 쓸모 없는 재능이지만, 1970년대에는 엄청난 재주였다. 노래방도, 인터넷도 없었고, 심지어 노래책도 귀한 시절이었다. 노래를 끝까지 부르려면 외우는 방법밖엔 없었다.


5살, 6살인 나는 유행가 가사를 거의 외웠다. 어른들은 한 두번 들으면 따라 부르는 꼬마를 신기해했다. 어른들 앞에서 발을 까딱까딱하며 노래를 불렀다. 기억엔 다섯에서 열 명 정도 앞에서 불렀던 듯하다. 노래가 끝나면 박수가 나왔고, 앵콜과 함께 이 노래, 저 노래 불러보라고 주문이 이어졌다. 노래가 모두 끝나면 누군가 100원을 주었다. 나는 그 재미에 노래를 부르라하면 주저 없이 불렀다. 자꾸 부르니 가사는 더 잘 외워졌다.


이제 부락을 넘어, 리장 마을까지, 그 옆 동네, 면 소재지까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버스에 타면 운전사도 알아보고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면소재지 사람들은 나를 '노래 잘했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니 선생님이 유행가 부르면 안 된다고 했다. 7살에 입학했으니 7살부터 나는 유행가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음악 책에 있는 노래를 불렀다. 일절이 끝나면 이 절, 이 절이 끝나면 계이름으로 불렀다. 마루에 앉아 동생들을 앉혀놓고 표지에 있는 국경일 노래부터 음악책 끝장까지 불렀다. 음악책이 끝나면, 작년, 재작년 음악책을 꺼내 모두 불렀다. 덕분에 동생들은 상급학년 노래를 모두 알게 되었다.


가사를 외우는 것은 결국 시를 외우는 것이다. 가사에 깔린 상황을 그리고, 마음을 떠올려보는 것이 좋았다. 지금도 멜로디와 리듬보다도, 가사를 훨씬 좋아한다.


이제 누구도 가사를 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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