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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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 거리는 산책은 이제 보기 어렵다. 러닝크루로 모여 뛰고, 파워워킹을 하고, 이어폰을 꼽고 뭐라도 듣는다. 쓸모의 산책이다.
산책은 본디 무쓸모의 시간이었다. 무쓸모의 시간이어야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 생각하며 살지만 생각으로 살진 못한다. 인간은 몸으로 산다. 생각은 몸의 작용이어서,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움직인다. 산책을 하다보면 맥락없이 생각이 떠오른다. 신기하고 반갑다. 감각도 예민해져 보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고 느껴진다.
계절은 무턱대고 오지 않는다. 때에 맞춰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다가온다. 삶도 덜컥 오지 않는다. 어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한 계절이 지나듯, 한 시절이 쌓여 지난다.
객관적 사실이 나에게 진실일 수는 없다. 경험하고 느낀 사실만이 나의 사실이다. 세상은 조건과 결과로 설명되지만, 삶은 조건과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삶에서 완전한 순간이란 없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왠지 위로가 되는, 안심이 되는 말이다. 방향만 유지한다면 조건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을 것 같다.
산책의 뒷모습은 평온하다. 아름답게 걷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