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타분한 개똥같은 이야기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405251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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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초등학교 시절까지의 이야기와 주변 문인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중고생, 대학시절 이야기는 없다. 초등학교 졸업식 이야기가 끝나면 이미 결혼하여 등단한 신경림 이야기다. 어린 시절을 너무나 잘 기억하니 글로 써보라는 권유로 쓴 책이라고 말한다.


읽으며 신경림 시인과 비슷한 부분이 몇 있어 더 몰입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아주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이야기를 기억한다기보다는 당시 장면이 그림처럼 저장되어 있다. 그림을 뒤적뒤적하면 상황이며, 표정이 하나씩 떠오른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고, 키도 아주 작았다. 뭐든 잘 외웠다. 노래 가사도 한두번 들으면 외웠고, 곧장 노래를 뽐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초등 국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 다들 칭찬해 주었다.


신경림은 장터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나는 몇 달에 한번 버스타고 장에 갈 수 있었다. 텅비었던 장터가 장날이 되면 사람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장터 아이들은 부모님 가게 이름으로 불렸는데, 신발집 아들, 시계점 아들, 쌀집 아들, 양복집 아들, 조합장 아들, 차부집 아들 뭐 이런 식으로 불렸다. 부락에 사는 사람들의 자식들은 어머니 출신 동네로 불렸다. '성두'양반, '성두'댁네 아들. 뭐 이런 식이었다. 면에 가면 조금은 기가 죽었다.


읽으며 잊혀졌던 단어를 만나 반가웠다. 지서, 순사, 동무, 질통, 당내, 재종, 삼종, 집안, 농번기 방학, 솔방울 줍기, 개똥 같은 것들이다. 서울 이야기도 그렇다.


나의 어린시절도 비슷했다. 대부분 집성촌이었는데 다른 동네에서 온 사람은 뜨네기 취급했다. 나는 이씨인데, 박씨 동네에서 살았다. 아버지 외가 동네여서 그나마 대우를 해주었지만,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심기, 벼베기 때는 농번기 방학이 있었다. 4~5일 정도 쉬웠던 것 같다. 그즈음 여자아이들이 많이 결석했는데, '애 봐야한다'며 오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면 농번기 방학 대신 직접 모를 심거나, 벼를 베는 대민지원을 나갔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거의 일을 시키지 않았다. 가끔 농약줄 잡기, 고추따고 말리고 걷기 정도 한 기억이 전부다. 딱 한번 놉을 못 얻었다며(일손이 없다며) 보리타작하는 날 조퇴사유서까지 써 주시며 중간에 오라 하셨다. 그땐 놉 못 얻었다는 이유면 조퇴가 되는 때였다. 집에 수도나 우물이 없어 물을 길어먹었는데, 아침에 맑은 물을 떠오는 건 내 담당이었다. 덩치가 작아 큰 주전자 2개를 가지고 갔었다.


점심시간에 되면 동생들 밥까지 찬합에 싸오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네 동생들은 우리 반에 밥을 먹였다. 점심 싸오지 못한 아이들은 점심이 시작되자마자 운동장으로 나가서 놀았다. 수학여행은 1박2일 경주로 갔다. 수세식 화장실 실습교육도 하고, 2자리 의자를 세명이 앉아서 갔다. 다들 '여행'이란 이름을 달고 가는 건 처음이었다.


겨울을 앞두곤 전교생이 솔방울을 주으러 다녔다. 겨울 땔감 보충용인 샘인데, 오전 수업이 끝나면 모두 산으로 갔고,점심먹고 전교생이 솔방울을 주으러 다녔다. 돌아보면 벼라별 걸 다 시켰다. 편지봉투에 쌀 담아오기는 으례 있었고, 88올림픽 경기장에 심는다며 잔디씨를 편지봉투 가득 따오는 숙제도 내 주었다. 우리 초등학교 관내 도로가 코스모스심기도 초등학생들이 했었다.


마당 개똥을 삽으로 떠 치우던 기억은 까맣게 잊고 있다 이번 책으로 다시 떠올랐다. 그때 개들은 얼마나 자유분방한가. 목줄도 없고, 아무데나 싸면 주인이 삽으로 떠 치워주었다.


리에 있는 초등학교인데 서울서 전학온 아이가 있었다. 깔끔한 남방에, 전자시계를 차고, 샤프를 썼다. 머리도 미용실에서 자른 것 같았고, 머리도 자주 감아선지 가지런했다. 놀 때 '타임'이라는 영어를 써서 우리 모두 놀랬는데, 서울선 이런다는 말에 다들 주눅이 들었었다.


'리'였지만, 선창가여서 술집이 군데군데 있었다. 그땐 잔술을 팔았는데, 내 기억엔 소주는 30원, 막걸리 사발은 50원이었다. 어른들도 돈은 없던지라 안주는 내어준 김치를 먹었다. 상회엔 땅콩이나 멸치가 비닐 봉다리에 쌓여 대롱대롱 매달려 팔렸다.


나는 부모님 잘 만난 덕에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되었고, 모든 것은 그 옛날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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