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냥' 전화하는 법이 없다.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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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팔순을 한참 넘기셨다. 하루에 2만보를 걸으시니 종아리에 근육이 탄탄히 잡힐 정도였다. 술도 거의 드시지 않는다. 가끔 어지럽다고 하셨는데 걷는데 무리는 없었다. 요즘은 더 어지럽다고 하셔서 이런저런 검사에 더해 뇌 MRI까지 찍었지만 대학병원 선생님은 별 이상이 없다며 어지럼약을 더 주시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가끔 풀썩 주저앉게 되어 밖에 다니는 게 무섭다고 하셨다. 어지러운 게 넘어서면 무언가를 잡을 정신도 없었다. 간신히 길 구퉁이에 한참을 앉아계셨다. 그래선지 요즘은 대부분 집에 계셨다. 아쉬운대로 실내 사이클을 타신다. 조금씩 집밖으로 나가는 시간도 횟수로 줄어갔다. 어지럼이 조금 괜찮아지시면 멀리는 아니지만 집밖을 도셨다. 답답함도 사라지고, 운동도 되고 좋다고 하셨다.


옛날 분이라 그런지, 아버지는 '그냥' 전화하는 법이 없다. 무슨무슨 날이니 와라. 누구네 집에 무슨 경조사 있으니 가보거라. 손주들 본 지 오래되었으니 데리고 와라. 왜 전화도 안 하냐. 김치 가져가라.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어느 날 오후 전화가 울려 보니 아버지였다. 전화를 받으니 젊은 사람이 받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셨구나 직감했다. 도로가 어디쯤 어지러워 쓰러지셨으니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은이는 아주 짤막히 모든 걸 전달했다.


"119입니다.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지셨습니다. 기절하신 상태입니다. 119 구급차로 응급실로 가고 있습니다. 서울대 보라매병원입니다. 바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멍하니, 대답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택시에서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연락했다. 아는 게 없고, 물어볼 곳도 없으니 우선 병원에 가야했다. 택시안에서 금기어 같은 '죽음'이란 단어가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어디 다치셨어도 정신만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추석때 갔던 3박4일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커튼에 아버지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서랍위엔 살짝 피가 묻은 모자, 핸드폰, 얇은 잠바가 있었다. 간호사가 CT찍으러 갔으니 곧 돌아오실 거라 했다. 어느정도 다쳤는지 모르니 마음은 여전히 안절부절이었다. 어머니와 동생들도 오고 있다며 아버지 상태를 물어보았지만, 아는 게 없으니 서로 애가 타긴 마찬기지였다.


아버지가 침대에 실려 왔다. 상상했던 것보다 몸은 깨끗했다. 아프다고는 하셨지만 말씀도 문제없이 하시고,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넘어지면서 손바닥을 세게 짚으셨는지 손바닥, 어깨, 광대, 관자놀이 이마에 상처가 있었다. 손바닥은 조금씩 파래졌고, 이마에 혹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119에 신고해준 젊은이들이 고맙다고 하셨다. 쓰러진 후 정신이 조금 돌아왔었는데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119에 신고해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쓰러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도 머리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간호사가와 수액을 달았다. 어머니와 동생들도 얼마 있다 도착했다. 응급실 보호자는 1명이어서 돌아가며 아버지를 뵈었다. 응급실에서 나오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얼굴은 다행이지만 안쓰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어머이는 앞으론 혼자 나가게 해선 안 되겠고, 꼭 당신과 함께 산책하겠다고 하셨다.


2시간 정도 후에 CT 검사가 나왔다. 별 이상이 없으니 집에 가시면 된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 집에 내려드리니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빌라 2층으로 올라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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