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27일차
아이를 재우다보면 같이 잠들때가 많다. 어제도 그렇게 9시도 못되어 자버렸다. 3시에 눈이 떠졌다. 며칠동안 백신 후유증으로 멍했었고, 그덕에 낮밤이 바뀌어 시차적응도 안 되어 머리는 더욱 멍했다. 그런데 새벽인데도 머리가 맑았다. 반가운 느낌이었다.
잠깐 세수를 하고 PC를 켰다. 읽지 못했던 트루카피 리포트를 읽고, 독서노트도 쓰고, 책도 조금 읽었다. 잠에서 막깬 침대위의 목소리가 아니라, 밝은 목소리로 전화영어 선생님과 10분간 대화같은 대화도 했다. 나도 뭔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새를 몰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5키로를 걸었다. 방축천을 걸어올라갔다. 매일아침 그 길로 출근하고, 매일점심 그 길에서 커피를 들고 산책하고, 매일 저녁 그 길에서 달린다. 보도블록의 굴곡이나 깨진 보도블록의 위치까지 아는 익숙한 길이다. 언제나 사람이 많은, 자전거와 킥보드도 많고, 가끔은 색소폰 부는 아저씨마저 나타는 무엇인가로 꽉찬 길이다.
익숙한 그길을 새벽이라는 낯선 시간에 걸었다.
차분한 공간이었다. 사람도, 자전거도 거의 없다. 색소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레 주변을 하나둘씩 둘러보게 되었다. 오리들이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며 제자리에 떠 있었다. 오리 한마리가 앞쪽으로 나아가더니 눈을 크게 뜬 채로 머리를 물속에 박았다. 부리를 흔들며 무엇가를 찾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와 내 발자국 소리가 선명했다.
가끔 산책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였다. 할머니 한 분이 네발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번화한 낮에는 뵐 수 없었던 장면이다. 걸어가면 어르신들이 띠엄띠엄 시야에 들어왔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새벽의 천변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꼽은 공무원이 공용자전거를 타고 앞질러 나갔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새벽의 천변은 낮과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같은 장소였으나, 다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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