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설레임을 서로는 알 수 없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by 고길동


단편 소설은 한숨에 읽어야 한다는데, 나는 단편소설마저 보통 끊어 읽는다. 그런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새벽에 잠깨어 한 번에 읽었다. 화려한 묘사로 꾸며지지 않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이야기가 담백하다. 오로지 감정만을 충실히 끌고 나간다.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탈만 하다. 딱 플래너리 오코너의 문장을 보는 듯 했다.


감정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지 논리 위에 놓여 있는 게 아니다. 사랑에 빠질 때 이유가 있는가? 일탈에 빠졌다고 깨달았을 때 뛰쳐나오기 쉬운가? 감정은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가라앉기를, 다른 감정으로 옮아타야 비로소 사그러진다.

누구에게나 설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설레임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고, 서로의 설레임을 서로는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겨우 자기가 느꼈던 설레임만이 쌓일 뿐이다. 모두 비틀거리며 늙어간다. 나도 늙어간다. 나이가 들면 설레임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겠지. 이성에 대한 설레임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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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발췌>


와인을 마시고 웃으면서 조그만 부엌에서 그의 곁에 앉아 있을 때, 내 마음은 은밀하게 떨렸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따금, 그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우리의 다리가 슬쩍슬쩍 닿곤 하는 것을 느꼈고, 간혹 이야기를 할 때 로버트가 손을 뻗어와 내 손을 만지는 때도 있었다.



나는 그때 이미 내 안에 어떤 충동이 잇었고, 그런 상사의 열병을 고백함으로써, 그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용할 수도 있었을 그 기회를 잡아 이용하지 않았다.



내가 마침내 이야기를 끝마치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것 때문에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헤더." "무엇 때문에요?" "이런 만남." 그가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만남을 되돌아보며 나를 미워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나는 그를 보았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알아요, 로버트?" 나는 그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요."



로버트가 림프 종양으로 죽었다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먹고 있을 때 말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그날 밤, 나는 뜰로 나가 통곡했다.



그와 사랑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의 아파트로 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날 로버트에게 저녁 강의가 있다는 것과 아홉시 무렵이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좀 마셨고 그런 다음 옷을 벗고 그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 서서히, 이제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의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 나는 와인을 한 잔 따르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식탁에 앉아, 눈 속에서 미식축구공을 던지며 노는 바깥 거리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또래였지만, 그 순간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상한 순간이었다.


https://blog.naver.com/pyowa/22256505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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