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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Mar 17. 2024

2024년 케이팝을 지배할 새로운 장르는 바로 '이것'



2022년 뉴진스(NewJeans)의 등장 이후 케이팝 씬에서 음악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유사연애 심리를 조장하거나 과도한 성 상품화를 하지 않아도 완성도 높은 음악의 힘만으로 대중을 설득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저지 클럽과 드럼앤베이스를 비롯해 오늘날 팝 씬의 트렌드를 두루 아울러 케이팝의 문법으로 녹여낸 뉴진스의 음악처럼, 앞으로의 케이팝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다채로운 세부 장르들을 흡수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하는 시도가 필수불가결하다.


빅뱅, "하루하루"
DAISHI DANCE, "Music Life in Forest"

따라서 이 글에서 필자는 앞으로의 케이팝 씬에서 새롭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부 장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대부분은 대중에게 생소한 장르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최근 케이팝 산업의 동향을 고려하면 그 무엇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래 전 일본 DJ 다이시 댄스(Daishi Dance)프리템포(FreeTEMPO)시부야케이(피아노 하우스) 사운드가 한국에서 재해석되어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빅뱅 '거짓말'과 '하루하루'를 낳았듯이 말이다. 케이팝의 역사를 뒤흔들 숨겨진 열쇠는 다름아닌 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케이팝 산업 종사자라면 서둘러 선점하라!



1. 플럭앤비 (plugg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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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뉴진스'를 꿈꾸며 트렌디하고 유니크한 음악을 찾는 신인 걸그룹



플럭앤비틱톡을 중심으로 각광받고 있는 신세대 장르로, 트랩 힙합의 하위 장르인 플러그(plug)와 알앤비가 융합되어 탄생했다. 얇고 레트로한 질감의 하이톤 신디사이저가 특징인 플럭앤비는 특유의 키치하고 캐주얼한 바이브가 Y2K 문화의 감성과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궁합을 이룬다. 이는 즉 뉴진스를 필두로 최근 케이팝 산업이 겨냥하고 있는 지점을 정확히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악기들로 이지-리스닝의 기조에 부합하면서도 빠른 템포와 경쾌한 무드로 춤을 추기에도 적합한 플럭앤비는 새 시대의 케이팝 걸그룹에게 딱 맞는 옷이다.


아일릿, "Magnetic" 하이라이트 메들리

아마 플럭앤비는 이 글에서 소개된 장르 중에서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케이팝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 장르임이 유력하다. 특히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 걸그룹이나 평균 연령대가 낮은 팀에게 플럭앤비는 영미권 팝의 트렌드를 부담없이 흡수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통로가 될 것이다. 그 예상대로, 하이브의 신인 걸그룹 아일릿(ILLIT)이 플럭앤비를 전면 차용한 곡으로 데뷔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오는 3월 25일 공개될 아일릿의 데뷔곡 "Magnetic"을 통해 케이팝의 미래, 플럭앤비 장르의 첫걸음을 맛보자.




2. 퓨처 펑크 (Future F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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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열풍에 올라타고 싶지만 촌스러워 보이기는 싫은 힙스터 걸그룹


Moe Shop, "Notice"
Jingoro, "Must Be Love"

일본의 시티팝과 소울 음악을 재가공해 경쾌한 디스코풍의 템포로 끌어올리는 독특한 음악 장르 퓨처 펑크는 한때 인터넷을 강타했던 베이퍼웨이브(vaporwave) 음악의 일종이다. 보통 옛 일본 애니메이션, 화려한 네온사인, 컬러풀한 색감의 이미지들과 함께 사용된다. 본질적으로 리믹스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독립적인 장르로서 널리 인정받지는 못하는 편이지만, 퓨처 펑크만이 가지고 있는 비비드한 사운드 텍스처와 감각적인 리듬감은 분명 케이팝 음악이 지향하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뉴진스, "OMG" 퓨처 펑크 리믹스
이달의 소녀, "Hula Hoop" 퓨처 펑크 리믹스

아직 퓨처펑크를 전면적으로 시도한 케이팝 팀은 없지만,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등지의 프로듀서들이 케이팝 음악을 퓨처펑크로 리믹스한 작품을 여럿 선보이고 있다. 퓨처펑크의 유효성을 증명하듯 케이팝과 부드럽게 녹아들며 색다른 매력을 자아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팝 씬에서 레트로 열풍이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레트로한 무드를 세련된 텍스처로 풀어낼 수 있는 퓨처펑크의 잠재력은 분명 무궁무진하다.



3. 퐁크 (Ph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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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퍼포먼스와 야성미를 뽐내고 싶은 베테랑 보이그룹


KORDHELL, "Murder In My Mind"
PHONK ME, "GHOST"

202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퐁크는 특유의 어둡고 반항적인 무드가 척 봐도 케이팝 보이그룹에 활용하기 좋아 보이는 장르다. 음산한 카우벨 소리, 디스토션을 잔뜩 건 거친 베이스, 빠른 템포 등이 특징으로, 러시아와 동유럽 등지에서 특히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 시작은 힙합이었으나 전세계적으로 퍼지며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점차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의 특성이 더 부각되고 있는데, 유튜브 등지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 곡예 영상에 활용되며 드리프트 퐁크(Drift Phonk)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스트레이키즈, "락"
이채연, "I Don't Wanna Know"

퐁크는 강렬한 사운드와 파워풀한 에너지가 맥동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는 무대를 선보이고자 하는 케이팝 보이그룹에게 적합하다. 대표적으로 스트레이키즈가 지난해 타이틀곡 "락(樂)"을 통해 퐁크를 시도했는데, 강도 높은 '마라맛' 퍼포먼스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음악으로 평단의 호평을 모았다. 최초로 퐁크를 케이팝에 들여온 것은 뛰어난 댄스 실력으로 알려진 솔로 아이돌 이채연의 수록곡 "I Don't Wanna Know"인데, 퐁크 장르의 청각적 쾌감을 충실히 재현하며 그 유효성을 입증했다.



4. 샘플 드릴 (Sample D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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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장르를 하고 싶지만 대중성도 놓치기 싫은 남자 솔로 아이돌


Bear Bando, "EVERYBODY SHOT"
C Blu, "Champions"

변칙적인 박자와 위협적인 808 베이스, 폭력적인 가사가 특징인 힙합의 세부 장르 드릴은 2010년대 힙합 씬을 강타한 대표적인 히트 상품이다. 사실 2024년 현재 기준으로는 다소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장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지 클럽과 결합한 저지 드릴(jersey drill)이 등장하는 등 드릴을 응용한 하위 장르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미국의 래퍼 케이 플락(Kay Flock)을 필두로 흥미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는 샘플 드릴(브롱스 드릴) 장르를 주목할 만하다.


라이즈, "Love 119"
블랙핑크, "Shut Down"

샘플 드릴이란 이름 그대로 유명한 팝송을 통으로 샘플링해와 드릴 리듬에 입히는 작법을 뜻한다. 예시로 가져온 샘플 드릴 곡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이나 의 "We Are The Champions"와 같은 메가히트곡을 샘플링해 독특한 무드를 창출해내고 있다. 기존의 드릴 음악이 가지고 있던 과도한 폭력성과 어두운 무드를 덜어내고 익숙한 샘플들로 대중친화적 성향을 더했기 때문에 메인스트림에서 활용될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이는 블랙핑크, 아이브, 레드벨벳, 라이즈 등 수많은 팀들이 샘플링 작법을 더욱 전면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최근 케이팝의 기조와도 일치하는 바이기에 기대감을 높인다.



5. 컨트리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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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팬덤을 겨냥하는 남자/여자 솔로 아이돌


Morgan Wallen, "Last Night"
Lil Nas X, "Old Town Road"

최근 빌보드 차트가 심상치 않다. 2010년대를 풍미했던 EDM과 힙합을 몰아내고 다시 컨트리 장르가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알던, 미국 시골의 구수한 풍미가 배어있는 고전적 컨트리가 아니다. 현재 가장 핫한 컨트리 스타인 모건 월렌(Morgan Wallen)이나 잭 브라이언(Zach Bryan)의 음악은 컨트리 악기만 사용한 팝에 가깝다. 심지어 컨트리 리바이벌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Old Town Road"는 밴조 악기 샘플을 사용한 트랩 힙합이다. 새 시대의 기로에서 컨트리는 지속적으로 타 장르와 결합하며 새 생명력을 회복해온 것이다.


엔믹스, "Run For Roses"
태민, "Pansy"

케이팝도 예외가 아니다. 엔믹스의 수록곡 "Run For Roses"컨트리 음악의 필수 요소인 밴조와 피들을 사용해 케이팝과 컨트리를 융합했다. 뼈대는 모두 케이팝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컨트리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기본적으로 컨트리가 아티스트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토로하는 장르인 만큼 팬송처럼 진중한 톤앤매너가 필요한 트랙에도 활용하기 유리하다. 태민 "Pansy"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상징하는 장르인 만큼 컨트리의 상업적 가치는 실로 거대하다. 또한 컨트리 장르 특유의 사운드와 진정성 역시 매우 유니크하게 활용될 수 있는 무기라 할 수 있다. 점차 해외 시장 공략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컨트리의 압도적인 시장성은 케이팝 산업에게는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타겟이라 하겠다.





이제 케이팝 산업은 저열한 성 상품화로 시장을 유지하던 예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뉴진스를 필두로 한 4세대 아이돌들의 음악적 황금기가 가져온 비가역적인 혁은 대중이 더 '좋은 음악'을 원하도록 만들었고, 이제 우리는 그 요구에 응답해야만 한다. 이 글에서 언급된 다섯 가지의 장르는 어쩌면 그 혁명의 두 번째 불꽃을 지필 열쇠일지도 모른다. 다채로운 음악 갈래의 하이브리드적 융합을 통해 케이팝 산업의 음악적 깊이가 한층 증대되어 대중과 리스너 모두를 포섭할 수 있는 장르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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