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앤오프, SuperM, 오마이걸 외 8곡
온앤오프 - 스쿰빗스위밍
한승우 - Sacrifice
GRAY - STAY THE NIGHT
박진영 - When We Disco
SuperM - 100
브레이브걸스 - 운전만해
원호 - Losing You
오마이걸 - SUPADUPA
이견 없이 한국 힙합 최정상 프로듀서 중 하나인 GRAY(그레이)의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가 프로듀서로서 뽑아내는 곡은 충실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지만, 솔로로 발매한 'TMI'와 같은 싱글은 힙합보다는 팝에 가까운 대중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그 퀄리티 면에서 양쪽 모두 호평받고 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STAY THE NIGHT' 역시 힙합보다는 팝이라 불러야 할, 소위 말하는 '말랑한' 싱글이지만 그의 프로듀싱은 빛을 발한다. 둔탁하지만 발랄한 리듬으로 벌스부터 텐션을 올린 후, 서정적이고 또렷한 질감의 아르페지오 기타를 촘촘하게 박아 넣는 프리코러스를 지나 직관적인 후렴까지. 세련된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짜 넣는 프로듀싱이 일품이다. 그레이가 소속된 레이블 AOMG의 새 멤버 DeVita(드비타)와의 합도 준수하다. 여러모로 웹툰 OST로만 소비되기엔 아까운 퀄리티의 싱글이다.
엑소의 'Ko Ko Bop' 이후로 오랜만에 듣는 듯한 레게 K-POP. 레게 리듬에 EDM 사운드를 끼얹는 작법은 'Ko Ko Bop'과 똑같다. 너무 노골적으로 비교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스쿰빗스위밍'에는 'Ko Ko Bop'을 완성도 있는 트랙으로 만든 캐치한 코러스 멜로디와 파괴력 넘치는 EDM 드랍이 모두 부재한다. 공간감 넘치는 백그라운드 보컬과 함께 떨어지는 파워풀한 퓨처 베이스 드랍의 만듦새는 분명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깔끔하기만 할 뿐,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무기가 없다.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없다는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레게와 EDM을 결합시키고, 심지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국적인 단어 ('코코밥'과 '스쿰빗스위밍')를 내세우는 것까지 동일한 '스쿰빗스위밍'은 'Ko Ko Bop'의 그림자를 넘는 데 실패했다.
조금 유행이 지난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한때 K-POP 씬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짐승남'이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콘셉트를 가져가고 있는 빅톤의 한승우는 'Sacrifice'에서 나름 준수한 솔로 데뷔에 성공했다. 묵직한 베이스로 주도권을 잡은 후 비장한 기타로 청자를 집중케 하고, 두꺼운 신스를 낙차 크게 떨어트리는 드랍의 구성은 상당히 매끈하다. 수동적인 가창에서 벗어나 노래의 맛을 더하는 한승우의 곡 소화력 역시 돋보인다. 선율의 힘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지만, 한승우가 솔로로서 발을 내딛기 위한 기반을 구축한다는 제1의 목표는 무난히 성취한 데뷔곡.
대놓고 뽕끼 넘치는 멜로디. 정직하고 선명하게 찍힌 베이스와 드럼. 금방이라도 머리 위에서 미러볼이 번쩍일 듯한 유로디스코 곡 'When We Disco'는 레트로를 넘어 촌스러움의 영역에 도달했다. 싹쓰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 레트로를 하고 있던 건지 뒤늦게 깨닫게 만드는 싱글. 이럴 거면 선미는 왜 부른 건가?
각 팀의 에이스들을 모은 SM엔터테인먼트의 '어벤져스'.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프로젝트인 SuperM이 돌아왔다. 가장 돋보이는 건 자글대는 베이스라인 위를 속도감 있게 달리는 마크의 랩. 벌스의 포문을 그루비하게 열어주는 랩 이후 풍부한 백그라운드 보컬과 함께 다이나믹한 드럼 비트가 치고 들어오는 드라마틱한 구성은 특기할 만하다. 코러스에서는 전투적인 덥스텝 사운드로 비장미를 연출하고, 브릿지에서는 랩과 보컬 애드리브로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한시도 쉬지 않고 에너제틱하게 달리는 극적인 프로듀싱 덕에 '100'은 K-POP이라기보다는 액션 영화의 주제곡처럼 느껴진다. 전작 'Jopping'와 같은 기억에 남는 멜로디는 찾기 힘들지만 프로듀싱의 힘으로 어느 정도 극복해 낸 SuperM의 컴백 선공개곡은 K-POP 블록버스터의 서막에 걸맞는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트랙이다.
알 사람은 다 안다는 숨겨진 명곡 '롤린 (Rollin')' 이후 무려 3년간의 공백기 끝에 컴백한 브레이브걸스. 그때처럼 청량한 하우스를 기대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다소 당혹스럽게도 시티팝이 등장한다. 어찌 보면 그간 트로피컬 하우스에서 시티팝으로 옮겨 간 K-POP의 3년 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운전만해'는 아쉽게도 심심한 멜로디 탓에 큰 인상을 받기는 힘든 싱글이다. 사운드가 정돈되어 있어 깔끔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걸로 끝, 시티팝이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을 100% 구현해냈다고 보기엔 어렵다.
수많은 사건을 지나 이제는 솔로 아티스트로, 예전에 소속되어 있던 그룹인 몬스타엑스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된 원호 (WONHO). 해외 프로듀서에게 곡을 받고 한국어 가사로 번안할 시간이 없었던 탓인지 왜인지는 몰라도 모든 가사가 영어로 쓰인 'Losing You'의 첫맛은 상당히 말끔하다. 곡은 피아노와 함께 담담하게 진행되는데, 수려한 멜로디라인과 사운드가 영미권 팝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작 원호의 미숙한 보컬이 노래를 온전히 소화하지 못해 'Losing You'는 어딘가 어설픈 인상을 남긴다. 아직 보컬로만 승부하는 솔로 곡에 도전하기에는 이른가 싶다.
유행처럼 번지는 '걸크러쉬' 콘셉트에도 꿋꿋이 무해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지켜 왔던 오마이걸이지만, 무려 '초통령' 뽀로로와의 콜라보레이션은 놀랍다.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이 대한민국 캐릭터 사업의 대표주자와 손잡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 자체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싶지만, 일단은 적어도 곡 자체로는 호평을 내리기 어렵다. 'SUPA DUPA'와 '천천히 가자'를 주문처럼 반복하는 코러스는 다소 피로하며, 마디마다 삽입된 백그라운드 보컬은 동요 수준에 머문다. 실제로 동요가 맞으니 뭐라 하기도 어렵지만, 적어도 K-POP이라는 최소한의 바운더리는 지켜 주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