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레드벨벳, 있지 외 10곡
드림캐쳐 - BOCA
세정 - Whale
ITZY - Not Shy
DONGKIZ - 아름다워
효린 - SAY MY NAME
원어스 - TO BE OR NOT TO BE
MCND - nanana
방탄소년단 - Dynamite
레드벨벳 - Milky Way
김재환 - 안녕 못 해
아직 커리어가 4곡 뿐인 신인 그룹 ITZY지만, 그들의 곡은 크게 두 가지의 타입으로 나뉜다. 명확한 멜로디라인의 후렴을 배치하는 '달라달라'와 'WANNABE', 이에 반해 후렴 멜로디를 비우고 댄스 뮤직의 드랍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후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보컬과 랩을 끼워 넣는 'ICY'. 이번 곡 'Not Shy' 는 후자에 속한다. 색소폰이 유머러스하게 움직이며 재치 넘치게 무드를 만들고, 프리코러스에서는 사운드의 공간감을 확장하며 캐치한 멜로디를 늘어 놓는 프로듀싱은 'ICY'와 닮아 있으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마감되었던 전작에 비하면 코러스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컬을 충실히 받쳐 주었던 'ICY'의 사운드와는 달리 백그라운드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색소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점은 아쉽지만 'not shy not me' 후렴을 차지게 소화하는 유나의 뛰어난 곡 해석력이나 후렴에 맞춰 치고 빠지며 그루브를 만드는 드럼과 베이스는 특기할 만하다. 다소 과하고 산만해도 유쾌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않은가. 옛말에는 과유불급이라지만, 모자란 것보다는 넘치는 게 낫다.
드림캐쳐는 걸그룹뿐만 아니라 K-POP 씬 전체를 통틀어서도 보기 힘든 'K-POP 록'을 선보이는 독특한 팀이다. 방향성이 확고한 음악에 개성적인 세계관까지 합쳐지니, 어느덧 초동 3만 장을 넘길 정도로 팀의 체급이 훌쩍 커 버린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럴 수록 프로듀서는 더욱 변화에 기민해져야 한다. 드림캐쳐 특유의 록 사운드는 개성적이지만 단조로워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BOCA'에서 드림캐쳐 컴퍼니는 뭄바톤 리듬을 투입함으로써 뭄바톤과 록이라는 이질적이지만 신선한 조합을 선보이며 변주를 주고자 했다. 두 장르는 꽤나 매끄럽게 어우러지고, EDM 드랍이 위치해야 할 자리에 디스토션을 잔뜩 걸고 속도감 있게 내달리는 기타 드라이브와 묵직한 드럼을 빽빽하게 배치함으로써 본연의 색깔도 놓치지 않는다.
이처럼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의 매력은 장르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만, 여전히 그 확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드림캐쳐의 음악은 K-POP의 하이브리드한 스펙트럼을 증명하는 뚜렷한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씬의 중심으로 들어오기에는 리스너를 폭넓게 끌어들일 만한 포용력이 부족하다. 뭄바톤 리듬을 넣은 것은 어찌 보면 대중성과의 타협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대중성을 마다하고 걷는 록 음악의 노선에서 그들이 과연 대중성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예술성을 성취했는지도 회의적이다. 드림캐쳐가 주목받는 것은 아이돌 그룹이 하드 록 장르를 채택했다는 상징성 때문이지, 음악의 완성도가 록 뮤직 씬 전체에서 돋보일 정도로 훌륭해서가 아니다. 록 음악으로서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결과물을 내놓거나, 대중성과 타협하여 사운드를 개편하거나.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소속사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의 방치로 어느새 씬에서 잊혀져 버린 비운의 그룹 구구단. 그럼에도 Mnet <프로듀스101> 준우승자 출신인 김세정은 빛났다. 솔로 데뷔작이었던 '꽃길'은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며, 후속작 '화분' 역시 괜찮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워너원의 '에너제틱'과 펜타곤의 '빛나리' 등의 수작을 만든 데 더해 전작에서 'SKYLINE'으로 세정과 상당한 궁합을 보인 바 있는 프로듀서 Flow Blow는 이번 'Whale'에서 청량한 기타로 곡을 이끌어 가는데, 아쉽게도 멜로디 자체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지만 드랍에서 곡의 제목 'Whale', 즉 고래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보컬 찹을 배치해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멜로디나 사운드가 기억에 남을 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한계를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뒤집는 반전을 이끌어낸 싱글.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기타를 메인 소스로 활용하는 '아름다워'는 힘이 잔뜩 들어간 보컬과 과장된 비트가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에너지 넘치는 무드로 전개되는 가운데, 코러스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아름다워'를 외치는 보컬과 더불어 현란한 기타가 사운드를 빽빽하게 채운다. 시종일관 힘을 빼지 않고 속도감 넘치게 달리는 이 트랙은 다소의 피로함은 남길지언정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프로듀싱을 통해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SAY MY NAME'에서 효린은 레게 리듬에 묵직한 베이스를 얹고 여유롭게 노래를 이끌어 나간다. 매끈한 코러스의 만듦새는 기존 팝 가수들의 곡이라 해도 손색없고, 곡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소화해 내는 관록이 돋보이는 효린의 보컬도 훌륭하다. 레게라는 장르의 태생적 한계일 지도 모르지만, 3분 내내 무드가 일정하고 프로덕션이 그것을 커버해 주지 못해 다소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단점. 그럼에도 'SAY MY NAME'이 플레이어의 역량을 성공적으로 조명하는 수작임에는 틀림없다.
셰익스피어 극의 관용구를 인용한 'TO BE OR NOT TO BE'라는 제목에서는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기대되지만, 정작 기대와는 달리 터져야 할 때 시원하게 터져주지 못하고 갑갑하기만 하다. 인피니트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사운드는 2010년대 초반의 향수를 안기지만, 2020년에는 올드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트렌드를 끼워 넣고 싶었던 것인지 2절 벌스에서는 느닷없이 트랩 힙합 비트로 변주되는데 이 역시 긍정적이기보단 어색한 감흥만을 남긴다. 보코더를 사용해 몽환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포스트코러스는 무미건조한 곡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시도다.
다소 철 지난 듯한 질감의 신스를 앞세운 'nanana'의 사운드는 2010년대 초중반 유행하던 흔한 클럽튠을 닮았다. 신스가 담는 멜로디마저도 속된 말로 '뽕끼'가 넘친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유니즌 코러스가 촌스러움을 더하는 와중에, 후렴마저도 이 인상을 걷어내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두 번 듣기는 힘든 곡이다.
가사 전체가 영어로 된 곡이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백예린의 'Square (2017)' 이후 8개월 만인가. 방탄소년단이기에, 또는 'Dynamite'이기에 가능한 성과다. 신나는 클랩과 함께 브라스와 피아노가 트랙을 에너제틱하게 끌고 가면 부드러운 보컬과 힘찬 랩이 올라타는 'Dynamite'는 '작은 것들의 시'처럼 남녀노소가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팝 곡이다. 브루노 마스(Bruno Mars)를 필두로 하여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는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에도 안성맞춤인 디스코 장르를 선택한 것은 이 시점에서 방탄소년단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라고밖엔.
전반적으로 대중적 입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의도가 드러나는 'Dynamite'는 그럼에도 트랙의 매력 자체는 전작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디스코라는 장르를 택했음에도 촌스러움보다는 세련됨이 먼저 느껴지는 수려한 프로듀싱은 훌륭하나 코러스 멜로디의 캐치함은 덜하고, 1절을 지나면 급격히 힘이 빠지는 구성 면에서 그 짜임새가 다소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 역시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높은 음역대를 중성적이고 관능적인 목소리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민의 보컬이 몰개성한 곡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결과적으로 'Dynamite'는 방탄소년단의 무해한 보이밴드 콘셉트를 강화하고 씬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상업적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말할 수 있겠지만, 트랙 자체가 가지는 차별점이나 개성이 부족해 과연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디스코그래피에서 돋보일 만한 곡인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보아(BoA)에게 헌정하는 SM엔터테인먼트의 리메이크 프로젝트 'Our Beloved BoA'의 네 번째 주자 레드벨벳. 편곡을 맡은 켄지(KENZIE)는 청량한 밴드 사운드의 원곡 'Milky Way'를 말랑말랑한 재즈 팝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메인 악기를 기타에서 부드러운 피아노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섬세한 터치로 사운드의 디테일을 살려낸 세련된 편곡이 돋보인다. 2절의 시작과 동시에 깔리는 조화로운 재즈 사운드 위에 스캣까지, 재즈 팝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무엇보다 곡의 백미는 노련한 디렉팅이 인상적인 아카펠라. 선율의 힘이 다소 약한 것은 아쉽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곡의 한계이고, 적어도 이 곡의 깔끔한 프로듀싱에서는 아쉬움을 찾기가 어렵다. 원곡자 보아에게 여운 깊은 선물이 될, 탁월한 리메이크.
특기할 구석이 딱히 보이지 않는 김재환의 '안녕 못 해'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형 발라드 싱글이다.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들이 얼핏얼핏 떠오르는 진부한 선율과 뻔한 전개는 하품만 나온다. 김재환의 보컬을 이렇게 재미 없게 소비해 버리는 것은 안타깝다. 분명 솔로 K-POP 아티스트로서의 매력을 가진 김재환이지만, 현재 그의 행보는 노래방 차트에 차고 넘치는 흔한 언더 발라드 가수들과 다를 바가 없다. 프로듀싱의 방향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