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들과 함께 2010년대 후반 음악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행보를 걸어온 두 개의 걸그룹 중 하나인 이달의 소녀. 그러나 전작 'So What'은 SM엔터테인먼트의 입김이 닿은 탓인지 '걸크러쉬'라는 칭호를 획득하는 데 집착하다 음악도 콘셉트도 평범해지고 마는 실수를 범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전작과 비슷한 느낌의 제목인 이번 곡 'Why Not?' 역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걱정부터 앞선다.
허나 실수는 반복되지 않았다. 'Hi High'의 음악적 실패를 'Butterfly'에서 만회해 보인 바 있는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다시금 리스너에게 믿음을 주는 데 성공했다. 웅웅대는 베이스에 정박 랩이 딱딱 떨어지는 도입부만 해도 'So What'의 노선을 다시금 이어가는 듯 보이나, 이윽고 대반전이 일어난다. 숨고르기도 없이 처음부터 비트를 타이트하게 쪼개며 텐션을 비장하게 끌어올리더니 후렴에 이르러 갑자기 메이저 코드로 키체인지가 일어나고, 비장하기는커녕 유쾌하고 해맑은 톤의 유니즌 코러스가 등장한다. 보컬 찹과 유사한 질감으로 납작하게 조형된 이 당황스러운 코러스에 이어 경쾌한 기타와 통통 튀는 베이스 위에 단순한 구조의 훅이 전개된다.
예상치 못한 곡 전개에 청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질적인 후렴은 '빵' 터지며 속 시원하게 임팩트를 남겨주지도 못하고 훅은 그 짜임새가 상당히 빈약하다. 그러나 짧은 브릿지를 지나 마지막으로 다시 등장하는 코러스에서 악기들이 오밀조밀하게 추가되며 웅장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빚어내기 시작할 때, '괴작'처럼 느껴지던 코러스는 비로소 트랙과 하나가 된다. 청자는 영영 만나지 않을 것만 같던 두 개의 평행선이 끝내 마지막 지점에서 맞물리는 희열을 목격한다. 발성부터 불안한이달의 소녀 멤버들의 아마추어적인 가창은 이 교묘한 프로듀싱으로 인해 곡의 장치로서 의도적으로 디렉팅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K-POP이라기보다는 실험적인 아트 팝(Art Pop) 장르에 가까운 이달의 소녀의 'Why Not?'은 맘 편하게 즐기며 감상할 수 있는 종류의 음악은 아니지만, 정말 간만에 나타난 '재미있는' 작품이다.
Weekly Pick!
B1A4, '영화처럼' : 8.0
'왕년의 오빠들' B1A4가 돌아왔다. 2017년 [Rollin'] 이후 무려 3년 만의 컴백이다. 멤버 신우가 작곡에 참여한 타이틀곡 '영화처럼'은 생각보다 그 만듦새가 수려해 놀라움을 안긴다. 멜로우한 발라드 곡으로 좀처럼 임팩트를 남기기는 힘든 K-POP 시장이지만, B1A4는 그동안 쌓인 연차에서 다져진 노련한 감각으로 트랙을 컨셉츄얼하게 구성해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스트링을 필두로 한 다채로운 악기들을 차근차근 쌓아올리며 서사성 넘치는 가사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한 편의 드라마틱한 뮤지컬을 본 느낌이다. 자극적인 사운드와 평면적인 가사로 꽉 채운 휘발성 싱글들이 난무하는 K-POP 씬에서 이 정도로 탄탄한 완결성을 가진 트랙은 정말 오랜만이다. B1A4, 확실히 아직 죽지 않았다. 덧붙여, 곡을 처음 듣는 분은 꼭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시길.로맨틱한 무드의 노래인데 왜 앨범 커버에는 뜬금없이 좀비 떼가 있는지 알게 된다.
세븐틴, 'HOME;RUN' : 6.9
스윙 리듬에 다채로운 악기들을 조화롭게 엮어 넣은 'HOME;RUN'은 사운드적으로 흠잡을 구석이 없이 깔끔한 트랙이다. 브릿지를 이끄는 재지한 피아노나 후렴을 받치는 경쾌한 브라스 사운드가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들었다. 매끈한 트랙에 비해 보컬 멜로디의 파괴력은 약한 감이 있지만, 다이나믹한 스윙 사운드를 완성도 있게 구현했다는 것만으로 K-POP 씬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마마무, '딩가딩가' : 6.4
마마무의 열 번째 미니앨범 [TRAVEL]의 선공개곡 '딩가딩가'는 단적으로 말해 딱 '마마무스러운' 곡이다. 곡 전개나 사운드 구성은 우리가 아는 마마무의 음악적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감흥이 덜하다. 펑키한 비트를 타고 유쾌하게 뛰노는 듯한 후렴 멜로디는 마마무답게 깔끔하나 어디까지나 그것뿐, 전작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음악적 요소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미 'HIP'으로 자신들의 음악적 잠재력이 아직 한참 더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는 마마무이기에 아쉬움을 잊고 향후 발매된 앨범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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