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방탄소년단(BTS)은 너무나도 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두 발을 딛고 선 위치는 변해도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언제나처럼 진솔하다. 데뷔 초반의 'Miss Right'을 닮은 멜로우한 무드의 힙합 비트에 '봄날'의 서정성을 얹은 'Life Goes On'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방탄소년단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는 한 장의 흑백 사진 같은 트랙이다. 치명적인 전염병에 전세계가 마비되고 중소 기획사의 연습생들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른 하루가 돌아오겠지만,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함께라면 '미래로 달아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aespa, [Black Mamba], SM엔터테인먼트, 2020
에스파,'Black Mamba': 5.5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상당한 화제성을 끌어모으며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와 소통한다는 기상천외한 콘셉트와는 달리 음악 자체는 전형적인 SMP의 작법을 따르고 있다. 전반적으로 무거운 사운드 위에 비장한 노랫말을 담아 낸 EXO-K의 데뷔곡 'MAMA'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데뷔다. 허나 사운드에 과도하게 힘을 주어 여러 번 듣기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 파격적인 그룹 시스템에 더불어 파격적인 음악으로 매니아들을 사로잡았던 선배 그룹 NCT의 선례와 비교해 보면 화려한 콘셉트에 비해 트랙의 개성이 현저히 부족하다. 자극적인 세계관보다는 음악으로 설득해 주시기를.
블링블링, [G.G.B], 메이저나인, 2020
블링블링,'G.G.B': 6.5
이미 레드오션이 되지 않았나 싶은 걸크러쉬 콘셉트 시장에 어김 없이 등장한 신예 블링블링. 'Bad Girl'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본인을 '못된 지지배, 미친 지지배' 라는 (다소 과격해 보이기 까지 하는) 단어로 지칭한다. 노림수가 너무 뻔해서 우습게 느껴지는 일차원적인 가사와는 달리 재미있는 리듬과 독특한 퍼커션 구성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엿보인다. 신인 그룹의 일장일단이 고스란히 드러난, 지극히 신인다운 트랙.
모모랜드, [Ready Or Not], MLD엔터테인먼트, 2020
모모랜드,'Ready Or Not': 7.7
B급 감성 이미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애초에 노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만큼 모모랜드는 꾸준히 양질의 곡들을 발매해 온 팀이다. '뿜뿜', 'I'm So Hot', 'BAAM' 등의 EDM 넘버들은 이지리스닝 트랙으로서의 매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모랜드라는 팀의 음악적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일관된 클럽튠 기조가 반복됨에 따라 점차 식상함을 토로하는 의견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발매된 'Ready Or Not'은 우리가 그녀들에게 기대하는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팀의 매너리즘을 제법 덜어 내는 교묘한 변화구다. 청량하고 가벼운 비트 위에 쉽고 직관적인 후렴을 얹는 방식에서는레드벨벳의 서머송 '음파음파'나 위키미키의 'DAZZLE DAZZLE'이 연상되지만, 코러스가 끝난 후 현란하게 춤추는 색소폰이 이 곡의 주인은 모모랜드임을 또렷이 각인시킨다. 한여름 바닷가에 딱 어울릴 곡이 초겨울에 나와 버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쉬움을 찾기 어려운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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