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C(아크)의 예고된 귀환

<SKIID>, ARrC(아크)

by 문어

덴마크 철학자이자 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단절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와 형식에 맞추려 할수록,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이 희미해지고,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흐려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는 이 상태를 “자기 자신이 되기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고통”으로 설명했다. 절망은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고, 감정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느껴진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금이 스며드는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그 균열을 자각하는 감각이다.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순간을 약해진 상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단절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 생이 남아 있음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감정이 사라질 때 인간은 묻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자신에게 향하는 첫걸음이 된다.


ARrC의 <SKIID>는 이 질문의 가장자리에서 노래한다. “error error in the mirror”라는 말은, 자신을 바라보지만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자기 단절이 가사 속에서 직접 드러난다. “학교라는 screen 속에서 너만 glitchin’”은 규범과 성과가 정답이 되는 환경 속에서 혼자만 다른 리듬으로 움직여버린 자신을 기록한다. 정상 작동을 요구하는 세계에서 “푸른 창 system down”, “404 can’t be found”는 존재의 기능이 흐려질 때 발생하는 공포다. 손에서 펜이 미끄러지고 생각이 멈출 때, 화자는 정지하지 않는다. 대신 미끄러진다. “다시 켜봐 모두 재부팅”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사라지는 자신을 붙들려는 시도다.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가장 깊은 절망은 무너지는 순간이 아니라, 무너질 때조차 아무 감각이 남지 않는 상태다. 이 노래가 붙잡는 것은 바로 그 이전의 미세한 진동이다. 아직 느끼고 있기 때문에 버티는 자리다.


그래서 이 노래는 추락이 아니다. 귀환의 예고다. 세상은 계속 움직이고, 시스템은 같은 속도로 돌아가지만, 화자는 그 안에서 자신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너를 불러보지만”이라는 말은 절망 속 외침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는 방식이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벗어나는 길을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았다. 다시 자신이 되겠다는 조용한 결단. <SKIID>의 미끄러짐은 포기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감각을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완벽하게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기어코 사라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렇기에 이 곡이 보여주는 좌표는 실패가 아니라 생존이다. 빠르게 회복하려 하지 않는다. 천천히, 그러나 자신 쪽으로 기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다. 아직 자기 이름을 부르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생은 그런 마음에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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