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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10. 2021

행복은 발가락 위에

 유달리 더웠던 그해 여름, 그날 애인은 친구를 만난다고 훌쩍 가버렸고 나는 평소 하지도 않는 패디큐어를 바르러 시내까지 나갔다.     

 

“어떤 거로 해드릴까요. 다듬는 동안 천천히 골라보세요.”     


경찰학원에 들어가고 이런 곳은 처음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운동복을 입고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아트를 보고 있다가 한눈에 스펀지밥이 눈에 들어왔다.

 

“저 이거 할게요.”     


그때부터 그해 여름 내내 발톱에는 네모난 스펀지밥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스펀지밥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형광등과 햇빛의 차이에 눈이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독서실은 에어컨 덕분에 춥다시피 했기에 나왔을 때의 그 굽굽함과 더위는 좀 성가셨다. 남자 친구인 듯 남자 친구가 아닌 남자와 크게 말을 하지 않고 주위에 갈만한 식당을 골라서 갔다. 주로 바로 옆 칼국수집에 갔다가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고 다시 독서실로 들어갔다.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그해 여름은 연락 오는 사람이, 나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독서실이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그야말로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될뻔한 것이다.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차쯤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때 몇 달 동안 그 스펀지밥을 꾸준히 하고 다니느라 25만 원의 돈을 썼다. 지금은 발톱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게다가 그런 것을 크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뭘 하지 않아도 행복해 보이는 스펀지밥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튼 행복한 누군가가, 내 발가락 위에 있다.’


 아마 그해, 이십 대 중반이 지난여름, 남자 친구인 듯 남자 친구가 아닌 남자는 진짜로 훌쩍 떠났지만 그럴 때마다 내 옆을 지켜주었던 스펀지밥. 고맙다는 말도 못 한 채 25만 원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아이 둘이서 계속 나를 찾아주는 바람에 스펀지밥은 필요 없어졌지만 누군가에게 또 발가락 위의 행복이 되어줘. 스펀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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