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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11. 2021

마 그렇게 되어 버렸네


 휴대폰 매장에서 개통을 하다 보면 꼬일 때가 많다. 손님이 지난달 요금을 내지 않았던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다. 통신사 측에 바로 수납 요청하고 개통하면 되니까. 그런데 아예 그 미납금이 오래되어 보증보험사로 넘어갔다던지, 밀린 요금이 수백만 원에 달한다던지, 본인 명의가 아니라던지, 계좌가 다르다던지. 예전에 개통한 번호가 요금이 미납되어 중지되었는데 그 번호를 기억조차 못한다고 하던지 그러면 그날 개통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이라고 왔는데 등본에 같이 있지 않아서 가족관계 증명서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계좌 주인이 명의자랑 달라서 계좌 신분증이 별도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사실 기기를 등록하는 그 작업 자체는 10분도 안 걸리지만 그 외 변수가 많다. 게다가 분기별로 한 번씩은 내 실수로 손님 두 명에게 기기를 바꿔치기해서 주기도 하고 유심을 바꿔치기해서 주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입구가 있어서 출구가 바로 보였더라면 조금 더 자연스럽고 쉬웠겠지만 나는 하는 것마다 꼬였으므로. 특히나 2년 동안 직원으로 있다가 야심 차게 휴대폰 매장을 열고 손님이 없자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때의 일기를 읽어보면 오직 그 이야기뿐이다.

 

‘직원이었을 때는 잘되었던 게 왜 사장이 되니 잘 되지 않는 것일까?’     


 그 답을 나중에라도 찾았더라면 새로운 휴대폰 가게를 또 차렸겠지. 그러나 정말인지, 정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파트 분양사무실에 들어갔다. 하루 300 콜씩 성실하게 티엠을 돌렸다. 그 정도 하면 한 달에 한두 건은 계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10년 넘게 이 일을 하신 베테랑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결국 팀장님의 말은 틀렸다.


 그런 실패가 반복되자 일을 털고 나올 때 어느 정도 담담한 마음이 되었다. 일상을 지키며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마 그렇게 되어 버렸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다. 아직도 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런 경험들이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웬만큼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지도 않고 부끄럽지도 않다. 나무가 웃고 울고, 바다가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다. 늘 그렇듯 제자리를 지키고 나무는 나무처럼 있고 바다는 바다처럼 있다. 나 역시 여기서 늘 필영처럼 있다. 반찬을 잘 만들지 못하고 운전도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필영처럼 쓰고 필영처럼 생각하며 산다.     



지금도 정답은 모르겠다. 왜 망했고 잘되지 않았을까. 왜 실패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 것들에게 정말로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하루하루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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