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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

글 쓴 지 2년

by 김필영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 일했던 휴대폰 가게에는 누군가가 매장 위 서류를 정리하고 있고 일했던 성형외과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내가 일했던 자리를 채우고 있다. 고시 공부를 끝낸 지도 8년 정도가 지났지만, 그때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아직도 그 독서실에 있다.



오후 1시, 사람들이 커피숍에 하나둘 모여든다. 나는 여기에 지금 2년째 일주일에 3번씩 오고 있다. 일주일 내내 올 때도 있었고 일주일 내내 못 온 적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3일 정도는 온 것 같다. 이곳에 도착하는 게 내 일이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고 책만 읽을 때도 있고 멍하게 창밖에 보이는 빌라가 몇 층인지 세기도 한다. 하늘의 색깔이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나이를 유추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다가 보면 쓸게 떠오른다. 쓰겠다고 의자에 앉아있으면 무조건 생각은 나고 그 생각을 옮기면 된다. 쓰다 보면 가벼워지고 가벼워지면 여러 부분에서 경쾌해진다. 무거워지면 가라앉게 되는 것 아닐까. 때때로 누군가는 죽기도 하고.



나는 느리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지만 아마 언젠가 (제대로) 죽기는 죽을 것이다. 남들처럼. 다들 비슷하게 시작해서 비슷하게 끝난다.


모든 일을 할 때 대충 하는데도 느리다. 느리다 보니 대충 하게 된 건지, 천성이 대충 하는 성격인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무슨 일이든 잘 못 하고 요령도 없다. 시장에서 곰국을 사 와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도 냄비를 작은 거로 골라서 냄비 안에 곰국이 다 넘치게 만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문을 열어서 커튼이 날리고 그 커튼이 꽃병을 쳐서 책상이 물바다가 되고는 한다. 아무 데나 놔두는 물건들은 쌓여서 어딘가에서 몇 개씩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눈앞에 물티슈를 빈번하게 잘 찾지 못한다.


예전에는 소주를 잘 마셨고 영어단어를 잘 외웠고 지금은 글을 쓴다. 방석 만들기는 하지 않고 요리는 아주 가끔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예전처럼 술을 못 마시고 영어단어를 외우지 않는다. 모든 것은 강물처럼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날마다 여기서 새로운 글을 쓴다.



글을 쓴 지 2년이 흘렀다.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아닌 시간의 단면을 나만의 언어로 쓴다.

뚝딱뚝딱, 집을 짓고 있다. 누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빠르지 않아도 되고 상상력을 펼쳐도 된다. 내가 가는 방향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된다. 헷갈리면 헷갈리는 대로 나약하면 나약한 대로 모두 드러낼 수 있다. 그 편이 좋아서 날마다 여기서 쓴다. 글 같은 건 쓰지 않은 생활을 했더라면 감출 수 있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있긴 있을까. 확실히 못 감출 거라면 드러내는 편도 괜찮지 않을까. 드러내지 않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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