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는 어땠나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포 있음)
마음이 복잡할 때는 보이는 걸 봐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된다. 간단하다. 하수구 구멍부터 민들레, 그리고 어떤 돌멩이들, 신호등, 차선, 진한 노란 선, 그보다는 흐릿해진 흰 선. 오늘은 영화를 볼 것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가끔 남의 마음마저 짐작하는 괴이한 짓을 하기도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기도 하고 미리 걱정하기도 한다.
아이가 잠들고 슬금슬금 방을 빠져나왔다. 남편이 야간근무를 가고 잠이나 글이 아닌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몇 년만일까. 영화 하나 집에서 보는 데 몇 년이 걸리다니.
영화를 틀려다가 잠시 멈추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엔 별게 없어서 다시 닫고 옆에 아이가 먹다 남겨놓은 하리보 젤리와 서랍에서 생라면을 꺼냈다. 그 생라면이 너구리라는 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망설임 없이 부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틀었다. 극 중의 찬실이는 마흔 살 피디인데 좋아하는 감독 한 명과만 일을 했다. 그런데 그 감독이 죽고 나자 찬실 역시 일자리를 잃고 어디서 불러주는 데도 없어 잠시 일을 쉬게 되었다. 그 과정에 머무르게 된 할머니의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남자도 만나고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게 되었다.
찬실이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솔직하고, 영화를 사랑하고, 귀엽다. 그리고 당당하다. 영화가 끝나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졸린 눈으로 남편에게 카톡 한 통을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천사처럼 자고 있다.
극 중에서 날씨 얘기가 몇 번 나온다. 찬실이는 목도리를 하고 나오기도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안 추워?’ 라며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 날씨는 어땠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파트 화단에서 보았던 노란 개나리를 떠올랐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아까 본 개나리가 얼마나 예뻤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치는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매우 아름답다. 아마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보지 못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