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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평 살이

by 김필영

2월, 인테리어로 집이 공사 중이라 임시거처에 머무르고 있다.

30 평에 네 가족이 있다가 12평으로 옮겼다. 처음 방을 마주 보았을 땐 꽤 커 보였는데 내가 들어가자 그 공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하원 후 아이들이 크레파스 하나 꺼냈을 뿐인데 집안 꼴이 엉망이 되었다.


밥상을 밥을 먹고 난 뒤 바로 치우지 않아 둘째가 앞을 보지 않고 달리다가 부딪혔다. 세탁실에 빨래하러 가니 바깥에 놓인 김치냉장고 때문에 문이 안 열렸다. 빨래 바구니를 옆으로 세워서 조심스레 들어갔다. 작은방 코드 꼽는 걸 부엌에서도 써야 해서 오늘 하루만 5번 꼽았다가 뺐다가 했다. 그 방은 코드 때문에 문도 닫을 수 없다. 하루에 몇 번씩 흰색 코드를 꼽았다가 검은색 코드를 꼽았다가 반복한다. 드라이기 검은색, 다시 전자레인지 쓸 때는 흰색, 인덕션은 굵은 검은색.

빨래를 해도 너는 곳이 작아 마르지 않으면 새로운 빨랫감을 널 수 없다. 12평에서 잘 사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너무 게으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난다. 아무리 치워도 발에 툭툭 크레파스가 차이는 것이 싫고 베란다 문에 매번 어깨가 부딪히는 것도 싫다. 토퍼에 아이들과 같이 누워 자지만 수없이 맨바닥으로 떨어져서 잠이 깨는 것도, 목에 계속 담이 걸리는 것도 싫다. 월말쯤 되니 치질이 튀어나왔고 귀에서는 윙윙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제는 밤새 두통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 아무 일인지 이쯤 되니 헷갈린다. 이제 이사를 가기까지 4일이 남았다. 내가 산 밥그릇, 국그릇, 컵 책 모든 물건이 보고 싶다. 특히 체크무늬 침대 매트릭스. 내가 고른 젓가락에는 무늬가 없었다. 내가 고른 컵은 컸고 무거웠고, 내가 고른 푸르뎅뎅한 빛깔을 가진 접시는 피자를 올려놓고 데워먹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종일 집을 치웠는데 설거지를 깜빡했다. 책상 앞 의자에는 분명히 바퀴가 달렸지만, 너무 뻑뻑하다. 역시 또 글이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서 집 앞 커피숍으로 왔다. 한 줄씩 써 내려가다 보니 단어들이 촌스럽고 바보 같다. 그런 게 오늘은 왠지 위로된다. 아무튼, 이게 내가 결정해서 쓴 글이다. 그리고 여기 앉아서 어제도 오늘도 뭔가를 쓴다. 장면이 생각나면 일단 글로 써본다. 놀이인지 직업인지 모르겠지만 어제 원고를 넘기고 오늘 또 쓴다.



쓰기 위해 그곳에서 나오고 쓰다 보면 확실히 나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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