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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진짜가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며 다시 만난 보통의 사람들

by 김필영

실제로 피아노를 치지 못하지만,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나는 내가 원래 쓰던 건반보다 한 음계 높은 건반을 사용한다는 기분으로 피아노를, 아니 나를 사용했다. 오랫동안 썼던 그 음은 일정한 톤이 있어서 여차하면 바로 꺼내서 쓸 수 있다. 밝고 유쾌하게.


일할 때마다 꺼내 썼던 이 건반은 본모습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 또한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사람들과 만났다. 자리를 채운 사람들은 초등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했다. 빙 둘러보니 그들이 마치 내 삶의 어떤 부분을 함께 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스피치학원을 같이 다녔던 동기 같기도 했고 휴대폰을 사러 온 손님 같기도 했다. 아파트 분양사무실에 온 사람 같기도 했고 부동산 티엠을 할 때 전화를 받던 사람 같기도 했다.


늘 친절해야만 했던 그때처럼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게 된 김필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중 저 아는 사람 있으세요?
아마 저를 다들 모르실 거예요. 저는 평소에는 마트, 동네 놀이터에 주로 있고 혹은 뭐 시장이나.. 아무튼 저는 아직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아무튼, 그들은 나를 모두 몰랐지만 나는 그들이 친숙했다.

마음을 닫았다가 열게 되었을 때의 몸짓, 상황, 미소, 그리고 특유의 말투.

30대, 40대. 50대 60대….

“아니 폰요금이 이번 달 너무 많이 나왔어!” 화를 냈던 아줌마가 갑자기 생각났고, 80살이 넘던 핫도그를 팔던 할아버지도 기억났다. 그들은 그들과 닮아있다. 수업을 하는 내내 전혀 떨리지 않았다. 익숙한 행동을 하고 있다.



열두 시 반쯤 수업이 끝내고 은행을 걸어서 갔다. 신호등을 몇 개 건너며 초록 불이 되기를 한참 기다리기도 하고 바로 신호가 바뀌어서 서자마자 건너기도 했다. 하늘을 보며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았고 10분 정도 걸었을 때 노트북이 들어서 꽤 무거운 가방을 반대쪽으로 바꿔 맸다. 레이를 샀지만, 아직도 이 모양이다. 아직도 걸어서 은행에 간다.



글감을 찾으며 꽤 많이 걷고 떠도는 내가 수업을 듣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신이 쓰는 글이 꽤 괜찮은 글이라는 말은 해줄 수 있겠지.



아무렇게나 걷고 쓰고 하다가 토요일에는 글쓰기 수업을 한다. 티브이를 켜고 리모컨으로 뭘 볼지 한참을 고민했던 것, 금요일 밤 술안주의 메뉴에 대해,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홍삼을 생일선물로 받은 기분에 대해 쓴 글을 보고 듣는다. 친숙한 그들은 역시나 ‘진짜 얘기’를 해주고 나는 꽤 오래 그것을 생각했다. 진짜 멋지다.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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