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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어느 나라애길래

한국 말을 못 알아듣죠?

by 김필영


감정이라는, 마음이라는 애는 진짜 갑자기 온다. 심사숙고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 애가 솟아오른다. 화를 낼 땐 화가 슬플 때는 눈물이, 이런 식으로 갑자기 찾아온다. 어떤 신경질을 낼 때도 정말 사소한 것에 갑툭튀다. 어떤 앞과 뒤 없이 중간에 나오고는 한다.


얼마 전부터 또 글이 안 써졌다. 마음이 좀처럼 잘 먹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면 어쩐지 뭐라도 할 수 있는 가벼운 마음이 어디선가 생겨난다.


정말 글 같은 건 며칠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책상에 앉아 있다.

'글 같은 건 그래, 쓰지 않을 거지만 그래도 이 에피소드만 간단히 써보는 건 어떨까.'

아무튼 마음이라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결정을 내리면 어딘가에서 나와서 조금씩 움직이고 행동하게 된다. 나는 분명히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걔는 움직인다.

나는 하고 싶다고 지금 꼭 해야 한다고 했는데 걘 가만히 있다.

아무래도 걔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말을 못 알아듣는 걸까.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걔는 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이젠 정말 어떻게 돼도 상관없을 때 그제야 움직이는 걸까. 왜 그렇게 고집불통이고 느려 터졌을까. 하라고 할 때 열심히 하면 참 좋을 텐데.


마음을 먹는 것은 정말 어렵다. 게다가 먹은 마음은 좀처럼 소화되지 못할 때도 많다.

아마도 내 안의 마음이는 우리나라 애는 아니고, 나는 걔네의 언어를 알지 못하니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때에 맞춰 마음이 움직여주지 않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쩜 이렇게 효율성이 없는 사람일까 하는 자책을 많이 해서 이제는 자책이라는 단어만 봐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양말을 신고, 그래도 운동화를 신고 그래도 화장을 한다.


아무튼 마음의 언어는 모르지만 34년째같이 지내니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걔랑 같이 가려면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내 안의 걔는 가벼울 때만 움직이고 산책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마음은 어느 나라 애일까. 영어를 잘했더라면 소통하기 쉬웠을까. 덜 다그쳤더라면 좀 말을 들었을까. 자책을 좀 덜했더라면 오히려 다가와줬을까.


어떤, 눈앞에 보이는 것 말고 멀리 볼 수 있었더라면 같이 손잡고 20대를 보냈을까.


예전보다는 친해진 얘랑 앞으로도 서로 소통하며 잘 지내고 싶다. 네가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발견하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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