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 지도 2년이 지났으니 사람들과 소통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같은 것은 꿈도 꾼 적이 없지만 제일 소통의 통로로 적당해 보였다. 자막도 못 달고 수평도 맞지 않지만 내가 결혼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 어떤 고민에 대한 말들을 다 담았다. 도움이 될지, 이 영상이 과연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고 있는 이상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어떤 의미에서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계정을 만들고 영상 한 개를 찍어 올렸다.
아침마다 양말을 신고 집안에 머무르지 않고 밖으로 나갔던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부지런했고 용감했다. 그리고 아무리 재밌는 일을 하더라도 자정 무렵이면 잠이 들었던 나는 단순하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는 때때로 예민했고 이기적이었고 혼자 숨고 싶어 했었지만, 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느 부분, 시간을 돌이켜보면 반복되고 있었다. 일정한 주기별로 변덕조차 쳇바퀴 돌 듯이 반복하고 있었다. 머리를 자를 땐 항상 머리를 잘랐고 남자를 만날 때에는 항상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
지금은 항상 글을 쓰러 다닌다. 똑같은 일이다. 이 주기인 것이다. 날마다 이렇게 앉아서 나를 들여다보면서 글을 쓴다. 아마도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글 같은 건 쓰지 않았을까. 어떤 부분에서 잘됐더라면 그 일을 계속했을까. 그럴 것이다. 아마도 휴대전화 가게를 해서 잘됐더라면 그 일을 계속했을 것이고 아파트를 잘 팔았더라면 분양사무실에서 계속 일을 했을 것이다.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주위의 상황에 따라 방향을 바꾼다. 아마 1, 2점 사이로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졌더라면 나도 주위 친구들처럼 아직도 공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하다가 안 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언제까지고 계속한다는 것도 결정이지만 포기하는 것도 결정이다. 누구나 근사한 와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걸을 수 있는 운동화와 길,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버스를 타면 어떤 사람들은 종점 근처에서 내리고 어떤 사람들은 한두 정거장이 지나면 내린다. 버스에서 내리는 장소는 제각각이다. 모두 목적지가 다르니 당연하다. 타다가 다른 방향이라는 걸 깨달으면 재깍 내려야 한다. 내려서 다시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 타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내가 했던 잘못과 실수들에 대해 괜찮아지는 시간은 오지 않을뿐더러 그 잘못을 어떤 식으로 포장할 수도 없다. 그 두 글자에 어떤 단어도 낄 수 없다.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나면 그것은 그것대로 나 두고 다른 버스의 표지판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한순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지만 마음이 추슬러지는 시간은 오지 않는다. 슬픔은 슬픔으로, 공허함은 공허함으로 남는다. 그것은 그것대로 공간을 내어주고 우리는 다른 버스를 또 타야 한다. 다른 버스에 올라타기 전까지 그 어떤 방향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 타고나면 방법이 생긴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 했던 세계가 펼쳐진다.
모두 각자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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