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할 사람은 천지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by 김필영



며칠 전 서울에 다녀왔다. 나는 세바시 대학이라는 곳에서 대학생이기도 하고 글쓰기 담당 FT이기도 하고 세바시랜드 글쓰기 수업의 티쳐이기도 한다. 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역할에 맞게 세바시 스튜디오를 가는데 이번 일정은 학우로서의 참석이었다.



강연회장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울로 가는 KTX를 탔다.

열차가 수서역에 도착하는 알람이 울리고 실시간으로 카톡을 확인했다. 한 달 전쯤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피디님과 패널 한분과 약속이 있었다. 기차역에서 그분들을 만나서 함께 커피숍으로 갔다. 함께 앞으로 할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 후 시계를 보니 벌써 5시였다. 급하게 택시를 타서 호텔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버터링을 먹으며 세바시 공연장으로 걸어갔다.




지하 1층에 내려가니 수많은 학우들이 보였다. 담당 피디, 조교님과 인사를 나눈 후 입장했다.

중간에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왔던 정은혜 배우의 인터뷰 형식의 강연이 있었는데 제일 인상 깊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그런 강연이었다. 그냥 말이, 그녀가 쓴 글이 모두.



끝나고 열 시반쯤 호텔로 갔다. 원래는 편집자님과 만나기로 했지만 힘이 없어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다음 날 점심으로 미뤘다. 숙소에서 그날의 제대로 된 첫끼인 컵라면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편집자님과 초밥을 먹고 헤어질 결심을 보려고 했지만 영화관 자리가 앞에서 두 번째밖에 남지 않아 영화를 보지 않고 서점으로 갔다. 함께 책들을 둘러보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이런저런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마지막으로 맥주 한잔을 마시고 KTX를 탔다. 약간의 잠을 자고 울산에 도착하니 남편과 아이들이 역에 나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애들은 흰 티에 본인들이 아무렇게나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린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남편은 늘 입는 바지 두 개중 한 개를 입고 늘 신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다음날 가족여행으로 경주의 한화리조트에 갔다. 가기 전 버드파크에 들려서 새를 보고 토끼, 아이보리색의 양, 타조, 물고기, 자라 같은 것들을 보았다. 한화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뽀로로 수영장으로 갔다. 아이들은 이제 미끄럼틀까지 탈 수 있었다. 끝나고 난 뒤 아이 둘을 여탕에서 모두 씻기는 게 제일 일이었다. 밤에는 저녁을 먹고 가족과 함께 걸었다.




다음날에는 롯데월드에 갔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애들은 염소 4번, 닭 3번, 오리 2번... 놀이기구를 여러 번 탈 수 있었다. 안에 있는 키즈카페까지 가고 기차를 마지막으로 타니 오후 4시가 되었다.



다음 날이 오늘인데 오늘 새벽부터 눈을 떠서 오전에 있을 독서모임 책 변신을 읽었다. 이 책이야 당연히 여러 번 읽었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벌레가, 슬펐다.


'아니 왜 벌레로 만들었을까. 내가 비슷한 소설을 쓴다면 반투명의 플라스틱 인간 정도로 만들어서 내장이 다 보이는... '

혐오는 비슷하겠지. 멋대로 상상해보았다.




9시부터 11시까지 독서모임을 끝내고 그사이 남편은 아이들 영어학원을 데려다주고 나를 데리러 왔다. 함께 밀면을 사 먹고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즈음 교회청소를 잊고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헛. 나 교회청소! 어떡하죠? 아...”

남편에게 말을 하니 남편이 어머님께 이번만 청소를 부탁드리자며 전화를 걸어주었다. (어머님은 교회에 매일 가신다.) 순간 뭔가를 자꾸 잊어버리는 내가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와서 아이들과 좀 놀아주다가 키즈카페에 갔다 왔다.





아이들을 재우며 할라피뇨를 한통 시켰다. 저녁이 되었다.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본다.




글쓰기 수업 커리큘럼을 좀 더 풍성하게 짜려고 7,8월은 기존의 수업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9월부터 어차피 할 수업이 (내 기준으로 ) 많아서 이거라도 좀 더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수업을 없애니 잔 스케줄이 더 생겼다. 그것들을 다이어리에 적는다고 적지만 놓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계속 아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그들과의 약속이 소중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들도 점점 많아졌다.


곰곰이 글을 적으며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생사가 오가는 큰 문제는 아니다.

나는 지금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하는 히어로가 아니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히어로는 할라피뇨를 주문하지도 않는다. )

나는 여기서 나 정도만 조금 달랠 수 있는 그냥 사람이다.



'바빴네. '


지금부터 차근히 정리를 해서 일들을 처리해나가면 된다. 며칠간 헛살지 않았다. 지금부터 차근히 정리를 해서 일들을 처리해나가면 된다. 결국 적다가 보면 마지막은 늘 그렇게 기준점으로 돌아온다.





check list

바쁠수록 사건을 크게, 혹은 작게 보지 말자.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못하는 일도 있고 못할 것 같지만 해내는 일도 있다. 잘 한 부분을 크게 보지도 말고 못한 부분을 확대해석 하지도 말자. 복잡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일은 내 생사에 중요한 일인가? 아마도 안 하면 죽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을 제대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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