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단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만의 언어를 살피며 천천히 고른 속도로 말을 해 나가는 여자를 보면 쉽게 반한다. 특별히 성별을 나눌 필요는 없지만 내가 마주친 단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다들 여자였다. 그런 사람들은 어쩐지 혼자 있을 때에도 밖에 나갈 수는 있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을 것 같고 혼자 있어도 절대로 코를 파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남이 있거나 없거나 꼿꼿하고 정갈한.
빨래가 밀려있어도 양말과 팬티를 세탁기에 함께 넣고 돌리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대개는 관계에서 참는 것 같아 보였다. 참았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데 그 폭발할 때 물론 단정하게 폭발하지야 않겠지만 그 이후, 그 사건에 대해 나 같은 제삼자에게 말을 해줄 때면 이미 단정함을 구해와서 신념이 담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 마냥 좋다.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을 한 명씩 마주할 때면 기쁘다. 아마도 그들은 모르겠지만 그게 장점이라는 것조차. 나는 그것에 혼자 좋아한다.
이십 대 초반에, 어떤 소개팅을 나갔는데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명품 허리띠를 하고 있던 남자였다. 그는 내가 앉아있던 그 술집의 주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이 술집의 대표이고요. 낮에는 중국집에서 배달일 하고 있어요. 노느니 일하는 게 나은 것 같아서요.”
그의 말과 피부와 벨트가 동시에 떠올랐다. 아무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인물도 글에 쓸 수 있다. 이 이야기와 전혀 성관이 없는 단정한 여자의 이야기도 쓸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멋지다. 글쓰기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준다.
과거의 나는 분명히 지금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나와 이어진다. 어쨌거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풀칠의 글쓰기를 하다 보면 조금씩 원하지 않아도, 깨닫고 싶지 않아도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지금의 내가 어떤 부분이 바뀐 건지. 유추해보게도 된다. 딱히 그러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저절로 과거와 현재의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