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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04. 2019

나는 그때 왜 죽지 않았을까.

지금이 대충 살 수 있는 기회이다.

  “내일 보자.”

 “네. 언니. 조심히 가세요.”

밤 10시 반, 학원 수업을 마치고 1학년 교실에서 나오는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경찰에 의하면 그녀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부모님의 부부싸움 도중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다음날 그 소식을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생이지만 함께 순대 튀김을 먹은 적도 있었다.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붙잡아서 그 시간만 넘겼으면 혹시라도 살아있지는 않을까. 그 뒤 나는 중3이 되었고 고1이 되었다. 순서대로 자랐다. 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글을 쓰다 말고 근처 강변을 걸었다. 유명한 연예인이 죽은 다음 날이었다. 강가에 다다르자 물이 범람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비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문득 반 지하방에서 살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아파트 분양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건도 계약을 못 해 들고 온 200만 원이 금방 75만 원이 되었다. 반 지하방에는 보일러를 틀면 새끼 바퀴벌레가 3마리씩 나왔고, 화장실은 세면대와 변기가 원래 흰색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까맸다. 매일 밤 통장의 돈을 야금야금 없애면서 혼자서 연어 초밥과 맥주를 먹었다. 작은 휴대폰 화면만 몇 시간씩 보았다.

 ‘나는 세상에 주인공은 아니구나.’

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29살이나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그전까진 계속해서 내가 주연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아주 좋은 곳에 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아파트를 몇십 개씩 한 번에 계약하는 사람이 올 거야.’

그런데 맥주 한잔이 두 잔이 되고, 픽처 통을 비우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나버릴 수도 있겠구나. 별거 아니게 살다가 별거 아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지금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나 있을까.’     

 아파트를 결국 하나도 팔지 못하고 울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내려온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을 했다. 첫 만남에서 남편에게 썸은 없다고 못 박았다.

 “썸 탈 바에는 그냥 바로 사귀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만난 지 한 달 만에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가볍게 결정하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 3년이나 만났던 남자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1년 반 만났던 남자는 공무원이 되자마자 헤어지자고 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조언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들은 웃으면서 흘려들었다.     

 결혼해서 살다 보니 3년이 지났다. 그사이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가 둘 생기고 ‘여보’라고 불러주는 남편이 생겼다. 반 지하방에서 심각한 결정을 내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넘실대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대로 멈춰버린 사람들이 하나둘 생각이 났다. 멈춰버린 것보다는 물 위로 둥둥 떠다니고 있는 콜라 캔이 낫다. 어떤 충고도 조언도 듣지 말고 노력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콜라 캔은 계속 떠 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나뭇가지에 걸리기도 하고 캔 안에 물 말고 다른 것이 들어오기도 하면서 바뀐 상황에 의해서 다른 힘이 생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둥둥 떠다니다 보니 세상의 주인공은 여전히 못되었지만, 엄마와 여보가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분양사무실에서 일할 때까지만 해도 글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살아있으면 흘러 흘러 어딘가에 가고 죽은 사람들은 멈춰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줄 때 심각해지지 말고 대충이라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죽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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