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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Nov 17. 2019

잔머리가 올라오고 있다.

가끔 주사가 있는 나도 자라고 있다.

20대 초반이었다.

나는 놀이터에서 흙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제일 밑에 휴대폰을 넣고 그 위로 착착 흙을 쌓았다. 흙이 산이 되었다. 산을 완성하고 웃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똑똑똑 오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야. 전화 빨리 받아봐.”

오빠의 폰을 건네받으니 모르는 남자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어제 새벽에 폰을 주웠어요. 연락처에 가족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네? 어디서요?”

 “아...... 그게요. 어제 혹시 삼산에 가셨어요? 거기 있는 놀이터였는데 계속 벨소리가 나서 흙을 파보니 흙 안에 폰이 있었어요.”

내가 간밤에 꾼 것은 꿈이 아니고 내 주사였던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어디 계세요? 폰 찾으러 갈게요.”

버스를 타고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남자는 한여름에 검은색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키가 매우 작았다. 뿔테 안경을 쓰고 심각하게 나에게 다가와서 휴대폰을 주었다.

버스에서 계속 '내가 제정신이 아니네. '하면서 왔지만 흙을 파서 남의 폰을 찾아주는 사람도 역시, 평범해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죄송합니다. 아 감사해요.. 제가 꼭 사례를 하고 싶은데요.” 하며 나는 서둘러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꼭 사례를 하고 싶으시다면 저기 저 슈퍼에서 우유 하나만 사주세요.”라고 했다.

 “더우실 거 같은데 제가 우유 말고 커피 사드릴게요.” 바로 옆 커피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데리고 슈퍼에 갔다. 가게에 들어가더니 딸기우유를 골랐다.

그는 빨대도 하나 집었다. 나는 계산을 해주었다. 800원을 내고 가게를 나왔다.

우유를 마시면서 뜬금없이 본인의 집에 다음 주에 놀러 오라고 했다. 대기업에 이번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렇게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날은 내가 짐작했던 모든 것들이 틀린 날이었다. 옆에 있을 거라는 폰은 없었고 모르는 사람이 폰을 주워주었고 그 사람은 흙을 파서 내 폰을 꺼내 주었고 커피를 싫어하고 우유를 빨대로 마셨다. 그리고 그분의 말에 의하면 대기업에 합격했고 본인의 집 초대를 해주었다. 여름에 털모자인 것까지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아줄 때면 이따금 그날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모든 놀이터를 의심한다. 혹시 내가 흙에 묻은 것이 휴대폰 말고도 더 있었던 것은 아닐까.

10년간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는데 다른 것이 더 묻혀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금방이라도 흙을 파고 싶어 진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뭐가 묻혀있든 다 낡아버렸겠지만.

나중에 몇백 년 뒤에 유물로 내 물건이 나오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첫째 아이는 자꾸만 과일을 국에 찍어먹는다. 오늘은 미역국에 딸기를 찍어먹었다.

바닥을 닦을 거라고 하더니 젖병 솔로 바닥을 닦는다.

 “한 다인!”

소리를 지르는 하루가 쌓여가고 있다. 악어 이야기라는 책을 읽어주면 손수건을 들고 우는 악어의 눈물을 닦아준다. 겨울 모자가 이뻐서 쓰고 티브이를 보기도 한다.

정신 차려보면 뽀로로는 입이 없다고 울고 있다. 안경을 걸친 부리가 입도되고 코도 된다는 설명 후 에야 방긋 웃는다.

아이들이 잠들고 빨래를 개면서 남편 오래된 티셔츠를 보고 버려야 하나 한번 더입고 버릴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아까 애들 행동이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거울을 보니 어느새 잔머리가 올라오고 있다.

열심히 빠졌던 앞쪽의 휑한 공간을 나름 열심히 검은색 잔머리들이 메꾸고 있었다.

둘째는 정말 한동안 세 걸음에 한 번씩은 쿵쿵 넘어지고 박고를 반복하더니 지금은 하루에 세 번 정도밖에 안 넘어진다.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휴대폰을 흙에 묻는 것보다는 브런치에 글을 써서 올리는 편이 낫다.

그 정도 마음으로 앞으로 가고 있다. 머리카락도 자라고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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