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했는데 숟가락 하나 젓가락 하나 없이 시작해서 살면서 세탁기도 사고 냉장고도 샀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다 보니 세월이 다 지나가고 결혼하면서도 양가에 받은 것도 하나 없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 사는데만 10년이 걸렸고 이렇게 절약하면서 사는데도 여전히 부자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앞집 아줌마인가 옆집 아줌마는 물려받은 땅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을 일하지 않는데도 엄마 자기보다 훨씬 잘 산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고 했다.
“나도 너희 아빠랑 결혼 안 했으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났을 텐데. 누가 뭐래도 돈이 최고야.”
마늘을 까면서 혹은 무언가를 다듬으면서 나에게 엄마는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하는 이야기들은 씨앗처럼 나에게 심어져서 내 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아니 지금 아빠가 암에 걸린 이 상황에서 4년제가 말이 되냐. 그냥 전문대 가서 바로 취직해. 당장 생활비도 없는데 무슨 소리하니.”
고3 때였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좋고 국문학과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글 써서는 밥 먹고 살 수 없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나는 바로 2년제 수시 서류를 넣었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이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목욕만 하는 게 아니라 밥도 먹고 재미 삼아 화투도 친다. 수많은 이모들이 모여 있을 때 꼭 하는 자랑은 우리 딸은 용돈은 자기가 벌어 자기가 쓴다. 2탄은 자기가 벌어서 시집간다더라 이다. 전형적인 목욕탕 아줌마들의 자랑스러운 딸 중 하나가 나였다.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가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엄마 말은 법이 아니고 그저 엄마의 말일뿐이구나.
주말에 엄마가 음식을 해서 우리 집에 왔다.
“네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지 요 옆에 백두 철학관에 가서 물어보자. 거기 너희 고모가 그러던데 그렇게 잘 본다고 하더라.”
출산 후 처음 응모했던 글이 좋은 반응을 얻자 엄마는 이걸로 먹고살 수 있는지가 또 궁금한 모양이다.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아니, 내가 글을 써서 잘된다고 하면 글을 쓰고 안 된다 하면 글을 안 쓸 거도 아닌데 그건 왜 보는 거야. 게다가 나 지금 돈 안 벌고도 잘 살고 있으니까 더더욱 상관없어. 안 볼래.”
나는 더 이상 엄마 말을 잘 듣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첫째아이가 신발 신는 걸 어려워할 때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다인이도 신발을 잘 신을 수 있어. 단지 엄마보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할 수는 있어. 그러니까 못한다고 말하지 말고 천천히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