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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02. 2020

'또래에 비해' 말을 안듣지만

언젠가는 말을 듣겠지.


1월 1일이라 어린이집을 가지 않았다.

나는 일단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셨다. 그래. 오늘 하루 혼자서 잘해보자.

2시쯤 되니 둘째는 이미 잠 이온 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둘 다 있으면 오전에 낮잠을 자는 둘째의 패턴을 지킬 수 없다. 첫째가 빨리 자주어야 둘째도 잘 수 있는 것이다.

“다인이(첫째) 낮잠 잘 거예요.”

 “알겠어. 그럼 자러 가자.”

채 한 숟가락을 먹이지 못하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갔다.

 “다인이 밥 먹을래요. 잠 안 잘래요.”

 “그래. 그럼 밥 먹으러 가자.”

누웠던 몸을 일으켜 다시 식탁으로 갔다.

정확히 8번을 반복하고 나는 화를 냈다.

 “아니 언제까지 이럴 거야. 자자고 했다가 점심 먹겠다고 했다가.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대체. 다인이가 밥을 빨리 먹고 잠을 자야 세아도 잘 거 아니야.”

아이는 잠깐, 아주 잠깐 풀이 죽어서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45도 밑의 어딘가를 보았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서 다다다 다닥 도망치면서 나에게 말한다.

 “도망가지롱.메~~~롱”

오늘 하루가 언제 끝나는 걸까.

커피를 한잔 더 마셨다.

벌써 30개월이다. 큰만큼 큰 것 같은데 분명히 14개월 둘째보다 키도 월등히 더 큰데 육아가 더 쉬워지지 않는다.

말이 통하니 말을 안 듣는다.

신발을 모두 들고 와서 거실에서 신고 다닌다. 입었던 기저귀를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베개라면서 볼에 비비고 있다. 결국 아이들 둘이서 장난을 치다가 둘째 아이가 첫째 때문에 화장대 거울에 깔렸다.

그때 나는 바보같이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었다.

 “이렇게 하면 세아(둘째)가 아파 안 아파. 이렇게 하면 돼요 안돼요. 엄마가 여기 들어가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계속 이럴 거면 할머니 집 가서 살아. 무서운 외삼촌 만나러 가. 엄마는 다인이 못 키우겠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엄마 말 잘 들어야 산타할아버지가 또 선물 사 올 거 아니야!"

이 유치한 문장을 화를 내면서 말한다.

물론 아이는 또 잠깐 풀이 죽었다가 다시 다다다닥 뛰어다닌다. 그럼 나는 또 엉덩이 뒤에 소리친다.

 “제발 살금살금 걸어 밑에 집 아찌가 올라온다!”

아이는 살금살금 걷는 척하더니 다시 다다다닥 뛰면서 웃는다. 그러더니 나에게 와서는 내 얼굴을 때린다. 때리려는 의도인지 만지려는 의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고 나는 또 화를 냈다.

그렇게 지쳐서 저녁 8시쯤  뽀로로를 틀어주었다.

아이가 집중하고 평화가 찾아왔다. 그제야 아이가 남긴 소고기 볶음을 먹으며 며칠 전 갔었던 어린이집 면담회가 생각났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종이 같은걸 펼치고 엄마인 나에게 음료수를 한잔 먼저 주시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셨다.

 “다인이는 책을 무척 좋아해요. 또래에 비해 언어가 빠르고 문제가 생겼을 시 해결하려고 하는 적극성도 뛰어납니다. 그런데 말을 너무 안 들어요. 위험한 행동은 안 하는데 다른 아이의 칫솔 빨기 이런 소소한 것들은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하고요. 바깥놀이가 하기 싫은 날에는 절대로 안 나가려고 해요. 다른 친구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을 하면 말을 듣는데......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인 것 같아요.”

 “네......”

선생님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특히 겁이 많은 다인이는 위험한 행동은 잘하지 않지만 안위 험하다 싶은 행동은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한다.

뽀로로를 끄고 잘 준비를 했다. 양치를 시키고 아이의 엉덩이를 씻겼다.

어느 순간부터 다인이를 안고 화장실로 향할 때 길어진 다리가 갈 곳을 잃은 듯 덜렁덜렁거린다.

엉덩이를 씻기다 별안간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해법수학의 기초 문제조차 풀지 못해서 쩔쩔맸던 나를, 옆집에 살던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 오던 친구를.

첫째 아이의 다리에 로션을 바르고 난 뒤 내복을 먼저 입히고 바지를 위에 입히니 내복이 쑥 튀어나온다.

여름 끝자락 샀던 바지가 어느새 짧아졌다. 언제 이렇게 큰 걸까.

 다인이는 다인이대로 잘 크고 있다. 왜냐하면 해법수학을 못 풀었던, 또래보다 수학을 한참 못했던 나도 지금 나대로 잘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는 말을 듣겠지.

또래에 비해 말을 듣지 않아도 올해에 비해 내년에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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