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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03. 2020

내 애지만 나 혼자는 못 키우겠다.

목요일이다.

내일이면 첫째가 어머님 댁에 가는 금요일인데 어머님이 아직 연락이 없으시다.

별일 없으면 첫째는 금요일 어린이집이 마치면 어머님 댁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다가 일요일에 우리 집으로 온다.

어머님 댁은 시골이라 염소도 있고 소도 있고 개도 많이 있다.

아이는 그곳에 가서 감을 따기도 하고 고구마를 캐기도 한다. 재미있어한다.

식탁에 앉아 애꿎은 식탁 모서리를 탁탁 탁탁... 손가락으로 치다가 나는 한껏 억양을 높여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어머님~ 다인이 오늘 데리고 가시나요? 가방 어린이집에 맡길까요? 다인이는 할머니랑 자전거 타는 게 제일 좋대요.”

어머님은 이번 주 김장 때문에 시간이 되지 않으신다고 했다. 아쉬운 나는 억양을 내리지도 높이지도 못한 채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짐을 챙겨서 5분 거리인 친정으로 갔다.

어제도 두드렸던 친정집 문을 오늘도 두드렸다.

엄마와 친하지 않은 나는 엄마의 눈빛  각도 하나하나까지 눈치가 보이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이를 풀어놓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네. 양말 들고 가자고 난리더라. 그래서 데리고 왔어.”

과일조차 깎아달라고 부탁해본 적 없으면서 참 뻔뻔하게 아이를 맡긴다.

아이를 맡은 후부터 엄마는 정신이 없다. 안았다가 기저귀를 갈았다가 밥을 먹였다가 한다. 나는 그사이 읽고 있던 부동산책을 다 읽었다. 도대체 몇 번이나 아이 때문에 책을 덮었는지 모른다. 똑같은 챕터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그런데 엄마가 1시간 아이를 전담해서 봐주었을 뿐인데 책을 다 읽었다.

그대로 누워서 토요일은 아무래도 남편에게 잠깐 맡기고 글을 쓰러 가야겠다고 계획을 짜 본다.

남편에게 맡기면 아이를 대충 본다.

플레이스테이션 4에 있는 야구 게임을 주로 하면서 아이를 본다. 아니 보지도 않고 그냥 옆에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논다. 본인이 먹고 싶은 짜파게티 같은 것을 끓여서 아이에게 주기도 한다. 반찬은 보통 김에 밥을 싸서 주고 과자도 많이 준다.

내가 자유시간을 즐기고 집에 오면 아이는 입 한번 닦지 못하고 그날 먹은 게 뭔지 알 수 있을 만큼 입 주변이 엉망이 된 채 웃으면서 나를 안는다.

이렇게 되는 상황을 알면서도 나는 남편이 쉬는 날에는 눈 딱 감고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글을 쓰러 간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아이를 떼놓고 커피숍에 간다.

하루쯤 짜파게티를 먹는다고 아이가 죽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먹고살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기에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오늘도 아이를 떼놓을 궁리를 한다.





나도 내 애는 내가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키울수록 내 애지만 나 혼자는 못 키우겠다.

모자란 엄마이다. 사실이다. 다음 주에도 어머님의 연락을 기다릴 것이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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