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첫사랑이 샹년이었다던데?"
집에서 건축학개론을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며 개봉했을 때쯤의 나를 떠올렸다.
“우리 사귈까?”
“아…. 나 오빠를 오빠 이상으로는 생각해본 적 없었던 거 같아. 그리고 남자 친구 군대에 있는 거 알잖아….”
그와 일본의 거리를 어색하게 걷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방에서는 모두 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끼어서 먹었고 그는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대학교 1학년 때 그가 과제를 도와준 뒤부터 친해졌다. 학식을 둘이서 늘 같이 먹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부르면 언제든지 와주었다. 그때는 한번 마셨다 하면 새벽녘까지 술자리가 이어져서 그는 자다가도 내 전화를 받고 시내로 나오고는 했다. 도착해서는 자리에 앉아서 안주가 넉넉히 있는지부터 살피고 오징어나 알탕 같이 내가 좋아하는 안주를 더 주문해주었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날이면 파라솔 같이 생긴 그의 우산을 같이 쓰고 다녔다.
일본어 전공이었던 우리는 1학년 2학기 때 과 단체로 일본에 6주간 단기 어학연수를 갔다. 밤마다 손을 잡고 근처 마트를 가서 회와 맥주를 사 왔다. 그는 나와 손을 잡을 때 양손에 많이 끼고 있던 굵은 반지를 손을 잡는 반대 손에 몰아서 꼈다. 고백 이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그에게 했던 내 행동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자신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을 가질 터였다. 그때는 스무 살이라서 그것을 잘 몰랐던 걸까. 그래도 된다고 믿었던 걸까. 그 후로 그때가 떠오를 때마다 자다가도 이불 킥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 또 그 생각이 났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그랬을까.’
혼자서 영화를 다 보고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갔다.
“그, 처음 사귀었던 그분은 어땠어요?”
“완전 샹년이었어요.”
한결같이 남편은 그녀에 대해 물어보면 샹년이었다고 대답한다. 남편에게 첫 연애 상대였다. 거제도에서 갑자기 먹고 싶다던 투썸 딸기 케이크를 구하기 위해 몇 시간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고 야간이 끝나고도 그녀가 오라고 하면 바로 갔다고 했다. 뭘 해도 불평만 이야기하는 그녀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서 헤어졌다고 했다.
팬티만 입고 전 여자 친구의 험담을 하는 남편은 즐거워 보였다. 집에 있을 땐 옷 좀 입고 있으라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 하고 싶은 잔소리는 참을 수 있다. 옆에서 팔베개를 해주고 웃으면서 나를 봐주는 사람에게 샹년이 되지 않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누군가의 기억을 바꿀 수는 없지만 지금을 지금의 시간으로 채울 힘은 내게 있다.
*메인 사진과 본문 사진출처: 네이버 스틸컷(문제시 바로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