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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06. 2020

애만 키우며 1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첫째 8개월에 둘째를 가지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겁을 주었다.

“둘째 돌까지는 아무것도 못해. 애만 키워야 해.”

 “애가 둘인 것과 하나인 것은 행복은 2배이고 힘듦은 5배야.”

“첫째가 둘째 질투해서 계속 때려. 그래서 잘 보고 있어야 돼. 눈이라도 찔리면 어떡하니.”

그렇게 겁주는 말로 태교를 했다. 만삭인 나는 앞으로는 배가 나와 있고 뒤로는 아기띠를 해서 첫째를 업는 날도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연년생 육아 정말 힘들겠구나......’

아이를 낳고 보니 연년생이라서 그런지 그냥 애가 둘이라서 그런지 첫째만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더 힘들긴 했다.  





 출산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스피치 학원에 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딱 2시간 나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수업을 할 동안 남편이 아이를 보았다. 아직 60일밖에 안된 아기는 첫 수업에 많이 운다고 계속 카톡이 왔다. 나는 카톡을 못 본척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전화해보니 아기는 잠들어있었고 그다음 주부터는 울지 않고 남편과 잘 있었다.

처음에는 수업시간에 나도 발을 동동거리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아기는 잊어버리고 스피치 수업에 집중했다. 늘어진 배를 니트로 가리고 검은색 롱 파카를 입고 수업에 참여했다. 파마끼 없는 어중간한 생머리로 나는 열심히 앞에 나가서 발표를 했다.

아이를 떼놓고 와서는 항상 하는 발표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좋았다. 그 사람들은 내 배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여기 오는 것에 상관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대부분 회사를 다니거나 공무원인 남자들이라서 그들의 발표는 신선했다.

부동산 실패담이라던지, 울산에 맛집 혹은 관광명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에게 “모유는 먹여요? 엄마젖을 먹여야 애가 튼튼히 크지!" 하며 귀찮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튼 나는 거기서 처음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글쓰기 모임을 가게 되었다. 격주로 2시간이라서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남편은 어떻게든 된다고 등록하라고 해주었다.

거기서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고, 소감을 말해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렜다.

그리고 난 뒤 나는 글을 써서 문예지에 당선되기도 했고 출판사에게 기분 좋은 제안을 받기도 했다.

여름이 한창일 무렵, 출판 아이디어 공모전을 한 달 꼬박 준비해서 서류를 넣었다.

열심히 준비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을쯤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뒤 나의 자유시간 루틴은 먼저 산책을 하고 그 근처 가장 넓고 웬만하면 통유리로 된 커피숍을 고른 뒤. (창문이라도 있어야 한다.) 산책 때 떠올랐던 글감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다.

간단한 것 같은 이 과정에 아직은 4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그래서 남편이 쉬는 날이나 야간인 날 남편이 자고 일어나면 자유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스무개 남짓의 글들이 탄생했다. 아직 돈을 벌지 못하고 돈을 쓰는 일을 한다.

커피값, 산책하는 곳까지 갔다 왔다 택시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 들어간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남편이 야간이라 얼른 씻고 밖을 나왔다.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뭐 어떤가. 애가 둘이면 어떤가.

내가 부러워하는 브런치의 작가들처럼 한 달에 스무 개의 글을 업로드하지는 못하지만 2019년, 스무 개의 글을 올렸다.

정말로 애만 키우면서 1년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사실은 아직도 똥을 쌀 때는 문을 열어놓고 싼다. 아이 둘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

내가 똥을 쌀 때면 둘째는 첫째한테 한 대 맞아서 똥을 싸고 있는 내게 안겨있고 첫째는 뽀로로를 본다.

그렇지만 누워서 바둥바둥거렸던 둘째가 걷기까지, 첫째는 “엄마, 오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 라며 엄마를 녹이는 말을 배웠고 엄마인 나는 나대로 성장했다.

아무튼 애만 키우는 1년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스무 개의 글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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