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들은 나를 작가로 보지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수업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은 정말 정확하다. 아마도 내 하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면 내가 작가나 강사가 아닌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직접 수업을 하는 시간은 적고, 다른 사람 강의를 듣는 시간이 훨씬 길다. 일단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듣는데 몇 십만 원씩 한 달에 결제를 하며 책 역시 한 달에 서른 권은 훌쩍 넘게 구매한다. 사실 그런다고 나는 내 출간까지 미뤄왔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내실을 쌓는 일이니까. 지식이 없으니까 채워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끊임없이 읽으며 글쓰기 수업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한다. 집에서 요리는 아예 하지 않으며 청소 역시 친정엄마나 청소 이모님을 부른다. 하루를 크게 보자 가사에 몇 시간씩 투자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하루 3번씩, 누가 잠시라도 내게 시간을 준다면 커피숍으로 도망친다. 거기서 또 작업을 한다. 하루에 당연히 커피값으로 만원 이상의 돈을 쓴다.
가까운 거리든 먼 거리든 웬만한 거리는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택시를 타지 않으면 걸어서 가는데 걸으며 한 손에는 종이를 들고 강의 내용을 짠다. 이상하게 그렇게 걷다 보면 정말 말로 하기에 적합한 콘텐츠가 잘 떠오른다. 무튼, 택시비로 한 달에 몇 십만 원을 사용한다.
내가 유일하게 그냥 보내는 시간은 애들과 소아과에 갔을 때인데 그럴 때에도 아이들이 잘 있어준다면 노트북을 펼쳐서 작업한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글쓰기에 관련된 일을 한다. 내 글을 쓰지 않더라도 남의 글을 봐주거나 글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글쓰기로 어느 정도의 최소 생활비를 벌지만 그 돈은 내 생활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으로 모두 사용된다. 사실은 내가 번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에 그런 것들에 투자된다.
(물론 누구나 이런 투자가 선행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다.)
이번에 꿈찾사에 강연을 다녀왔다. 그 강연을 위해 나는 4시간을 걸으며 강연에 사용할 대본을 짰다. 발에 물집이 생겨서 절뚝거리고 메고 있던 가방에 어깨가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 무렵 생각이 났다.
“아, 이걸 배에 비유해서 얘기하면 쉽게 이해하겠네...”
약 5일간 호텔방에 혼자 갇혀서 30분의 강연을 정말 여러 번 시연해보았다. 삼각김밥만 먹으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루에 몇십 번 반복하자 안녕.. 만해도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완성도 있게 준비를 할수록 무대에 올라가면 내가 준비를 했다는 사실은 모두 잊어버린 채 그냥 말하게 된다. 나는 모든 강의는 그냥 생각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된다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에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게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신념. 그런 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더 있고 덜 있고의 차이일 뿐.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신념을 가지고도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계속 헤매게 된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말까지 많이 하는 타입이라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며 타인에게 불신을 줄 수도 있다.)
나는 글쓰기 수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일반적인 기초 글쓰기 수업에서는 항상 감정의 최적화에 대해 강조한다. 감정에 대해 글을 쓰면서 그 최적화를 이룰 수도 있고 평소에 관리를 잘해서 감정이 멀리 가버리더라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 수업이라고 하면 길어야 6주, 8주이고 보통은 4주 정도에 끝이 나는데 그 사이에 무슨 감정이 널뛰기를 하겠냐고 하겠지만 정말 그건 사람을 모르는 소리다. 수업 시작할 때 사이가 좋았던 부부에 대해 글을 적은 사람이 끝날 때는 이혼 직전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나 같은 경우도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고 2주 차에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첫 주의 다짐이 마지막 수업까지 가는 사람조차 드물다.
감정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부분인데 그런 부분까지 통제하라고 하면 야박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부분이야말로 정말 본인이 잘 다스려야 한다. 남에게 내 기분에 대해, 내가 얼마나 미칠 것 같은지, 죽을 것 같은지에 대해 표현한다고 해도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은 부분이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나는 이 감정을 다스릴 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다. 더 멀리 가도 된다. 내가 중심에서 벗어나는 감정, 분노, 슬픔, 화를 느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감정의 널뛰기이란 그냥 감정 자기네들끼리 과자 싸들고 소풍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감정이 어디로 소풍을 가는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다시 데리고 중심축으로 올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그 감정을 잘 데리고, 그리고 일찍 다시 중심으로 올 수 있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마음이 얼마나 지금 중심에서 벗어났는지 모르면 그게 정말 큰일이다. 도착지를 모르니 한참을 또 헤매다가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변한다. 내가 헤매는 동안 내 주위를 둘러싼 상황들은 멈춰있지 않고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내가 신임을 얻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한동안 헤매고 있다면 그가 나를 믿어주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내게 너무 공부만 해서 불쌍하다고 하지만 나는 낭비하는 시간 없이, 감정의 흔들림 없이 모든 일들을 바로바로 시작하고 글쓰기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나는 이제 어디를 가도 굶어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어디를 가도 다시 중심축인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어떤 말을 듣거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아이들을 재우고 내 방 노트북 위에 손을 올리면 다시 내 중심축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를 위한답시고 누군가에 대한 불평, 불만 혹은 나에 대한 통제를 하는 사람들을 분별해 낼 수 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내 바운더리를 설정하더라도 내게는 글쓰기라는 재설정 버튼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