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코끼리처럼

모든 동물은 그 동물처럼 살겠지.

by 김필영


내 첫 원고의 가제는 <필영처럼 산다>였다. (무심한 듯 씩씩하게로 출판 /을유문화사) 원고는 몇 곳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 제목대로 책이 나올 리는 없었다. 김필영이 누군지를 아무도 모르는데 필영처럼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글을 읽어보면 필영처럼 산다는 것은 멋진 일도 아니다. 일단 남들이 봤을 때 좋은 직업을 가졌던 사람도 아니었다. 주로 휴대폰 판매직이나 아파트 분양일 같은 나이와 성별 스펙과 상관없이도 일할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직업이 대부분이었고 그 직업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내지도 못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보았을 때 선망하는 직업은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변호사나 기자나 승무원 같은.)

그럼에도 필영은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결혼을 사귄 지 3주 만에 결정하고 내 인생을 남의 인생 보듯 관망하면서 산다. 그러면서 결혼 후 생활에 만족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필영처럼 사는 것이 육아 에세이로도 나올 수 없는 것은 필영은 육아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그렇게 큰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보다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식사 시간이 제멋대로이고 어린이집에 자주 늦는다. 나쁜 엄마까지는 아닐지라도 좋은 엄마와는 거리가 있는 엄마이다.




그런 필영이 글을 쓰면서 과거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재해석한다. 그 과거는 또 아주 누군가가 보았을 때 특별하거나 흥미 있는 이야기도 없다. 이혼을 세 번하거나 결혼을 다섯 번 하던지, 혹은 학교를 자퇴하던지 이런 이야기는 없다. 어렸을 적 받아쓰기를 빵점 맞은 이야기나 스무 살, 부모 몰래 차를 끌고 온 친구 차에 실려 별을 보러 가다가 그 차를 골목길에서 긁는 바람에 마트에 가서 차를 색칠하는 그런 별 볼 일 없던 소소한 일상이 나온다. 과거를 정리하면서도 필영은 계속 삶을 산다. 실패는 실패라고 받아들였고 실패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온전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모자람, 한계, 실패. 어리석은 선택들.









아무튼 책은 나왔지만 계속 필영처럼 사는 이야기를 적어나가려고 한다. 열심히 삶을 살아야 한다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 다 괜찮다는 에세이 사이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열심히 사는 것은 각자의 몫이고 게다가 어렵고 다 괜찮을 리는 없다.





사는 것은 늘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언제까지고 멈춰있을 수는 없다. 멈춰있을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해가 뜨기 전까지다. 어둠은 밝아진다. 시간은 지나간다. 우리도 멈춰있지 않고 걸어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고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잊어야 하고 우리는 아기였지만 이젠 어른이 되었다. 내가 지금 할 일 같은 건 스스로 다시 정할 수 있다. 뭐든 그만두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하고 똑바로 나를 바라봐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정말 운이 좋아서 글쓰기 선생님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 현재 울산에서 오프라인 글쓰기 수업, 글쓰기 모임, 그리고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 및 컨설팅을 하고 있고 세바시에서 글쓰기 강의를 론칭해서 판매하고 있다. 일이 많아진 관계로 분명히 일을 대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조금 바뀐 것 같긴 하다. 지금 내 다이어리는 시간별로 빽빽하게 일정을 적혀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필영처럼 산다. 아침이 되면 어제의 일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를 하고 어제의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쪼그리고 앉아 양말을 신으며 멍하게 오늘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커피숍을 간다. 무기력감에 시달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조금 늦게 커피숍에 간다.

조금 느리고, 대책 없고, 했던 일을 실패하고. 아닌 것 같은 일들을 그만두고 살면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서는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죽을 만큼 대단한 문제는 아니다.

나만은 나를 믿고 조금 천천히 내가 갈려고 하는 방향의 길을 가면 된다. 필영은 필영처럼 살고 사는 것을 글로 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처럼 살고 그걸 글로 썼으면.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괜찮음을 스스로 힘들 때 꺼내볼 수 있길. 아마도 책에서 누군가가 괜찮을 것이다 말하는 위로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괜찮음은 내 거니까.


모든 동물은 그 동물처럼 산다. 멋지고 예쁘고 귀엽게 사는 게 아닌. 나 역시 그냥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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