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이 나서 올려본다. 내가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2019년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때 모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작가를 모집합니다’라는 인스타그램 글을 보게 되었다. 7명을 선정해서 선정이 되면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을 해주겠다는 글이었다. 공저였고 출판 비용은 무료였다. 주제는 애인과 헤어졌던 일화를 쓰는 거였나 그랬을 것이다.
‘오 이게 뭐래? 나 쓸 거 많은데?’
제출해야 했던 출간 기획서를 단숨에 작성해서 넣었다. 그때 나는 <오후 5시, 치킨을 먹다가 남자친구에게 차인 적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출간 기획서를 만들어 넣었다. 그리고 다양한 목차를 구성했다. 내게 쉬운 주제였다.
결과는 합격.
졸지에 서울로 출판사 미팅을 가게 되었다. 사무실은 대치동이었다. 이런 일이...
나는 그때까지, 글을 쓰자마자 그곳에 당선이 되었으니 내가 정말 글을 잘 쓴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글을 제출한 게 아니라 출간기획서를 보고 뽑은 거였지만.)
또 내게 이것 저것을 설명해주는 그 출판사 대표님이자 출판 기획자분은 친절하시고 얼굴이 하얗고 인상이 좋으셨다. 계속 좋은 말만 해주셨다. 출간기획서를 노트북에 띄우고 켜서를 더블 클릭해서 이런 부분이 참 재치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라고 콕찝어 말해주셨다. 그쪽에서 2달 정도 시간 동안 글 7 꼭지정도를 써서 자신들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마감기한을 지켜서 그 출판사에 보냈다. 그걸 쓰고 보내는 사이 따뜻했던 날씨가 조금 더워졌다.
그랬는데, 그 뒤로 그쪽에서는 우리 7명을 모아놓은 단톡방도 만들고 출판계약서 비슷한 것도 썼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쩌다 몇 달에 한번 7명 중 누군가가 도대체 언제 일이 진행되냐고 물어봐도 계속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셨다. 나는 계속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1년이 지났고 그곳에서 계약을 했었다는 사실도 잊고 내 책이 출간될 거라는 기대도 조금씩은 잊게 되었다. 다행인 건 그사이 내가 브런치에서 135만 뷰를 기록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구독자가 늘고 있었고 이틀에 한번 꼴로 쓴 글이 계속 메인에 뜨는 바람에 조회수 뽕을 맞고 있던 시점이었다. 아무도 안 읽던 글을 몇만 명, 몇십만 명이 봐주니까 약간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늘 거기에 취해서 몇십 번씩 브런치 통계를 보고는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나는 2021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었고, 일반 에세이 투고 작가로는 처음이라는 명예를 안고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책을 출간하고 한참 지나서, 그러니까 얼마 전이다. 그때 내가 썼던 7개의 꼭지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연히 다른 학생의 글을 찾는다고 내 문서를 뒤지다가 발견한 거였다. 제목은 나름 신선했다. (간장과 나의 교집합, 쓰레기는 쓰레기통이 다 차기 전에 묶어 버리는 거야 등등의 제목이었다.)
"이게 뭐래... 와.. 미친 건가? 글을 내가 이렇게 썼다고?"
그때 그 글은 액자식 구성이었는데 (마치 구운몽처럼 깨어보니 또 꿈이었다 처럼.) 지금 보면 정말 일단 스토리 자체가 연결이 잘 안 된다.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구성까지 썼는지.
내 글을 내가 첨삭해주고 싶었다. 그때 그 글을 본 그 주, 그 전주, 그 달을 포함해 내게 글을 제출한 그 누구의 글보다 엉망이었다. 글을 보자 갑자기 그 출판사의 대표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너무 고맙기도 했다.
'내가 글이 이상해서 출판이 보류가 된 건가. 와 이게 출간되었으면 정말 큰 일 날뻔했네. 너무 부끄러워서 내가 썼다고 말도 못 하고 다닐 것 같아.'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방에 곱게 한 줄로 진열되어있는 내 책을 보았다. 다행히 아직 무심한 듯 씩씩하게 가 부끄럽지 않다. 계약 후에도 퇴고를 열심히 했고, 넣기 전에도 스스로 정말 많이 고친 원고였다. 물론 편집자님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함께 작업을 했던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편집자 복은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던 시간이었다. 그 사이 물론 글도 꾸준히 썼고 브런치에 메인에 올라가면서 글쓰기에 대해 감도 좀 잡게 되었다. 어찌어찌 조금씩 글이 나아지고 있었다. 진짜, 무심한 듯 씩씩하게 가 내 첫 책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는지.
그래서 혹시나 출판에 대해 조급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챌린지 첫 시작일의 기념으로 얘기해주고 싶다. 그 마음 너무나 잘 안다. 나도 책을 내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수록 차분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가야 한다. 책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안 좋은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잘 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래서 잘 쓰라고 차분히 천천히 가라는 게 아니다.
그 책은 내게 계속 남는다. 내 마음 안에 어떤 기억들처럼 내게 그냥 남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분하게 두고두고 열심히 노력해서 천천히 써야 한다. 사실 책을 내년 언제쯤 출간하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내년에 우리가 출간을 하기만 하면 된다.
제대로 된 책을 말이다. 누군가가 나는 겨우 몇 달 만에 책을 냈어요. 원고를 완성했어요. 출간을 했어요.라는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3개월 만에 내든 30개월 만에 내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그게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다.
글로성장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별별챌린지를 진행하는 66일 동안 사실 글쓰기 연습을 해도 좋고, 습관 만들기만 치중해서 5줄만 적어도 좋다. 어떻게 해도 다 좋다. 그런데 그 시간이면 사실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쓴다면 충분히 책도 나올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천천히 가라. 분명히 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66일 글쓰기 연습을 한 것은 언젠가 나올 내 책에 도움이 된다.
새해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든 제대로 가자. 챌린지의 끝은 출간이 아니라, 성장이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