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든 암이 아니든

나의 심층적인 욕구

by 김필영


얼마 전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고 왔다. 올해까지인데 일에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12월 마지막주나 되어서야 병원에 내가 있었다. 일반검진도 대상이라 소변을 종이컵에 담고, 피도 뽑고 엑스레이 같은 것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 산부인과 관련 진료도 받았다. 검사를 하면서 온통 머릿속에는 이걸 끝나고 초밥을 먹으러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와중에 틈틈이 기다리면서 생각의 탄생을 마저 읽었다. 진료가 끝난 뒤 초밥을 먹으며 검진을 본 사실은 그때 이미 다 잊었다.



그런데 어제, 모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00 산부인과입니다. 김필영 님 맞으신가요?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자궁경부암 고위험군이고 블라블라... 조직검사를 하셔야 할 수도 있기에 내원해주시면 저희가 블라블라..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두새개의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오늘 슬램덩크 극장판을 12시쯤 보려고 했었는데 그 시간에 산부인과에 다시 가게 되었다.


4년 만에 간 병원은 주차장이 바뀌었고 별관 건물이 하나 더 생겼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4년 만에 뵙게 된 의사 선생님은 여전했다. 마음을 편안히 하라고, 요즘은 자궁경부암 같은 건 2년에 한 번씩 검진을 하기에 암이더라도 죽거나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마지막 출산을 했던 2018년에 자궁경부암검진을 했고 그 뒤로는 산부인과에 오지 않은 거였다. 그러니까 4년이 지나버렸다.

의사는 4년.. 을 작게 말하며 조금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쌍꺼풀이 진한 눈으로 웃으며 말씀하셨다.


“뭐 그래도, 이게 오늘 찍은 사진의 결과가 다음 주나 되어야 나온다고. 이상이 확실히 있다면 조직검사를 하면 되이. 알겠지?"


편안하고 인상 좋은 산부인과의사 선생님 덕분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진료를 보러 남편이 함께 가준 것도 힘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자궁에 뭔가 넣은 건지 (아마 약이라 짐작된다.)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속옷이 다 베리지 않길 이라는 생각을 아홉 번쯤 하자 차가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집에 가서 남편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서 미술학원에 갔다 온다고 나갔다.

나 혼자 어두운방에, 내 방 침대에 기어들어갔다. 오후 4시 40분.

이 시간에 이렇게 누워서, 아이가 없는 황금 같은 시간에 있는 게 낯설었다. 그럼에도 그림자처럼 누워있었다. 두 시간 정도나. 4시 40분, 50분, 5시.. 시간은 흘렀다.

‘내가 당장 1년 만에 죽는다면 뭘 하고 싶은가?’


그랬더니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은 두 개였다.


하나는 가족과 시시껄렁한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 집에서 아이들 농담에 웃어주고 아이들을 씻기고 닦이고 재우는 것. 너무나 평범한 하루로 하루를 채우는 것.

둘째는 이야기를 쓰는 것. 긴 이야기를 쓰는 것. 한편이 소설을 완성하는 것. 어딘가에 있을만한 인물을 완성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생각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오늘 병원을 다녀왔더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암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에서

내가 암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건 없으니까. 마음을 다시 정돈하고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부도 좋고, 글쓰기 수업도 좋고, 모임도 좋고 사실 다 좋지만 이야기가 좋다면 이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딱 그 정도의 이야기. 아주 길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 평범하면서도 누가 봐도 내가 썼고 내 냄새가 나는 이야기.




아.. 나는 이런 걸 진짜 하고 싶었네. 부스스하게 일어나서 내 방 거울을 보았다.



그 거울은 비어있지 않았다. 다행히.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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