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구독자 1000명이 되었습니다

이런 글도 쓰는 날이 오네요.

by 김필영



브런치 구독자 1000명이 넘었다. 2022년 목표가 1000명을 채우는 거였는데 2023년 1월에 그 목표를 이뤘다. 1000명이 되자 별로 안 기쁠 것 같았지만 무슨 수상을 한 것처럼 지난날 브런치와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런 식상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그랬다.




2019년 6월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을 별로 올리지 않다가 10월에 있었던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응모한다고 그때도 하루에 2개씩 써서 10개를 금방 올려서 브런치북을 만들어 응모했다. 그 브런치 북은 물론 당선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쓴 글 중 하나가 처음으로 다음 메인에 올랐다. 그때 조회수가 4000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4000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묘하게 하늘과 땅 중간쯤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기분도 좋았지만 어떻게 써야 어떤 제목으로 써야 메인에 올라갈 수 있을지 연구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답을 유추하게 되었다.





그 이후 쓰는 글 중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글이 메인에 올라갔다. 쓰고 5분도 안되어 올라가는 글이 50%가 넘었다.

그러니까 그때 커피숍에서 글을 업로드하고, 노트북을 닫고 집까지 걸어서 15분 언덕을 올라가면 이미 통계에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찍혀있었다. 2일, 3일 있다가 올라간 글도 물론 있었지만 바로 올라가는 글이 많았다. 조회수도 1만, 10만, 그리고 할머니가 키운 애는 딱 티가 난대 라는 글이 당시 59만 뷰를 찍었다. 그래서인지 구독자도 가파르게 늘었다. 사실 노출빈도에 비해 내 글은 구독을 많이 하거나 라이킷을 많이 받는 글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구독자는 늘었다. 그래서 분유를 타다가도, 아이의 기저귀를 갈다가도,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다가도, 가슴 위로 아이를 재우다가도 나는 생각을 빠르게 메모했다. 그럼 커피숍에 가자마자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때는 지금에 비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가 18개월이었는데 회사어린이집이 3살부터 받아주었기에 나는 5개월 정도 갓난아기와 18개월 첫째를 돌보며 하루 2시간 커피숍을 갈 시간을 남편에게 얻었다. 사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생활할 수는 없었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나 자신의 무능함을 제때 씻지 못한 분유병에서, 꽉 찬 쓰레기봉투에서 72시간이 깜빡거리는 밥솥에서 확인하고는 했다. 그 외에도 화장실의 물때라던지 안방에서 먼지를 발견할 때. 내가 머리를 감지 않은 게 3일째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 나의 무능함을 확인하는 빈도가 많아짐에 따라 하루 글쓰기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글쓰기 같은 게. 그냥 방이나 제때 치우자. 분유병이나 제때 씻자.'

의미 같은 것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2시간 동안 글을 쓰게 되면 양쪽으로 정렬된 자아는 오롯이 나 중심, 중간정렬로 돌아왔다. 6개월쯤 글을 꾸준히 쓰자 뭔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 브런치를 하다가 글쓰기에 용기가 생겨 여러 차례 공모전에 글을 보냈다. 결과는 모두 낙방. 아주 작은 상도 나를 피해 갔다. 심지어 울산에서 하는 지역행사에서조차 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 왔다.





마지막으로 세바시에 원고를 넣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세바시에서 나는 그 당시 세바시대학의 학우였는데 그때 학우들이 무대에 서는 그런 공모전이 있었다. 마침 시기가 여름휴가 기간이라, 호텔방을 하나 얻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가를 가지 않고 원고를 작성했다.




그런데 그 원고가 당선된 것이다.


그때 세바시에서 왔던 첫 연락을 기억한다. 피디님께 걸려온 전화.

옷은 블라블라, 머리는 블라블라, 말씀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기뻤다.

그래서 세바시에서 출간 전에 브런치 작가라는 명함하나로 강연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뒤 세바시에서 나는 세바시 대학 글쓰기 전공 FT도 하게 되었고 세바시랜드 글쓰기수업 강사(티쳐)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 3개월쯤, 을유문화사에서 내 책이 나왔다.

을유문화사라는 좋은 출판사를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지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브런치가 없었더라면 나처럼 의지박약에게는 파일로 글을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고. 이런 놀이터가 없었다면 나는 자기 확신이 점점 떨어져서 중간에 그만뒀을 것이다. 특히 브런치에서 내게 선물해 준 조회수뽕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또 제안하기를 통해 이런저런 제안은 나를 더 글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행위가 아닌 글로 글값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까.






어느덧 구독자가 1000명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여타 sns에 비해 아주 작은 숫자라고 느껴지지만 여기 브런치 안에서 1000명은 힘이 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이 공간에서 더 열심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2023년에는 조금 더 큰 아이들과 가족이 된 조금 더 늙은 나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잘 모르겠다. 다만 더 다양한 주제로 더 힘을 빼는 이야기를 쓸 것이다. 이야기가 좋다. 그리고 브런치가 좋다. 나라는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브런치. 정말 감사합니다. ( 읽어주고 구독해 준 분들 역시 감사드립니다. 초창기 때부터 혹시 읽은 분들이 계실까요. 저희 첫째가 벌써 7살이 되었답니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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