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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에 100억이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by 김필영

100억이 내게 주어진다면?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질문을 받았다.

“만약에 주머니 속에 100억이 있다면 하루를 어떻게 살 거예요?”




그 질문을 며칠 동안 머릿속에 들고 다니다가 다음 모임인 오늘에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단 오전 시간에는 신문을 읽을 것이다.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 신문까지 다 읽고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체크해 봐야지. 평소에 급하게 읽었던 신문을 두세 시간에 걸쳐 읽는 것. 빨간색 색연필로 체크하고 중요한 부분에 대해 넉넉하게 고민해 봐야지.





두 번째로 점심부터는 글쓰기. 저녁 먹기 전까지 긴 시간 동안 글을 꾸준히 쓸 것이다. 어떤 글이든 상관없지만 소설을 쓰거나, 에세이라고 하더라도 묘하게 현실과 맞닿아있지 않은 지점에 대해 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어느 때 콜라 캔의 촉감이라던지, 붓으로 수채화를 그릴 때의 감각 같은 것들을 쓰는 에세이스트가 되어야지. 아마도 이 과정에서 산책을 하거나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을 멍하게 바라볼 것이다. 생각이 자유롭게 떠도는 시간.





그리고 저녁을 먹고는 독서를 할 것이다. 독서만은 잡식으로. 과학, 인문, 사회, 역사에 대한 책을 분야별로 1년에 한 분야를 정해서 심도 있게 읽어나갈 것이다. 많이 알아야, 내 행복에 대해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또 남을 함부로 평가 내리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삶. 이것이 어느 정도는 지식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이걸 쌓는 시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8시쯤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는 사람이 옹졸해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글자를 하나하나 가지고 놀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이 좀 옹졸해진 기분이 든다. (이건 단순히 나만 그런 것.) 그럴 때 걷기가 아닌 달려주면 내 몸뚱이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내 호흡이 이렇게 짧고 형편없음을 느끼게 된다. 1분을 3분처럼 느끼게 하고 매일 하면 매일 조금씩 는다. (적어도 서른여섯까지는 그렇다.) 정직하고 바르고 옹졸해지는 걸 막아주는 달리기.

그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가족과의 대화 후 취침한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한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입을 옷을 가격표를 보지 않고 산다. 그 정도.





적고 나서 보니 달리기는 꾸준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고 글은 글쓰기수업을 조금 줄인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여행이나 식사 역시 한 달에 한두 번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100억이 없어도 100억이 있는 것처럼 살고 100억이 없어도 괜찮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노트북 문서함에 글을 채우고 에이포로 채운 글을 뽑아서 읽고 흰 종이를 가지런히 모아서 탁탁... 정리할 때의 기분. 하루종일 다른 사람의 강의나 책을 읽고 글쓰기수업을 준비하며 밤늦게까지 지식을 쌓을 때. 그리고 달리기를 할 때 저기까지만 하자. 저기까지만 하자. 그 모든 것들을 빛나게 할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

그런 방식으로 하루를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이대로는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확신.

그 확신이 100억짜리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기분.

(물론 그럼에도 100억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겠지.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운동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이 분다. 가방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 읽을 책, 그리고 언제든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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