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햇빛이 얼굴을 비춘다. 바람이 차가운데 얼굴은 뜨겁다. 파도가 친다. 가까운 곳의 파도를 바라다보다가 저 멀리 바다 끝처럼 보이는 곳을 본다. 저 멀리 내게 벌어질만한 미래를 상상하다가 다시 시선을 내 발 끝에 닿을 듯 말듯한 파도로 옮긴다.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몇 발짝 뒤로 물러가서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았다. 파도소리를 계속 들으며 마치 풍선이 터지듯 하얀 파도가 크게 일렁이다가 이내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관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햇빛이 너무 강하지만 않으면 딱 좋을 텐데.
해변에 가면 항상 이렇게 파도를 쳐다본다. 바다를 보려고 하지만 늘 파도를 쳐다본다. 왔다 갔다 하는 그 강렬한 움직임이 자꾸 시선을 뺏는다.
“아파트 분양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혹시 있으셨나요?”
“네. 해도 안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얼마 전 있었던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그랬다. 나는 그때 비로소 완벽하게 해도 안 되는 게 있음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물론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의 그것은 '아, 역시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안돼.' 정도의 느낌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지 그게 정말 그 상황에서의 최선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때 열심히 했다. 물티슈에 스티커 붙이기, 하루 300통 전화 돌리기, 사람들에게 물티슈를 나눠주면서 말 걸기 같은 것들을.
그때 누군가를 만나면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렇다는 말을 스치듯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꼭 자기가 열심히 한 사례를 나열하면서 그의 우월함을 내게 증명해 보이려 했지만 뭐. 성공과 실패는 눈에 빤히 보이는 부분이므로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이 성공한 거고, 내가 실패한 거고. 그건 확실하니까. 누군가는 경찰공무원 학원에서 나와 경찰복을 입고, 나같이 떨어진 사람은 입지 못한다. 휴대폰 가게를 하다가 잘 되면 돈을 벌거나 가게가 늘고 망하면 있던 가게도 없어진다. 눈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성공과 실패.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쓰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글은 써야 늡니다' 같은 말은 해도 열심히 쓰라니 그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말처럼 느껴진다. 대개 글을 열심히 쓰자라고 마음먹으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몰입한다 정도는 맞겠지만) 그리고 나보다 몰입해서 더 많은 양을 쓴 사람이 너무 많기에 함부로 글 열심히 쓰세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이 많다. 생활 속에서 소재를 더 잘 찾고, 아예 생활 자체를 잘하니,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더 잘 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잘 듣는 것은 좀 있어서 먹고 입고 사는 이야기보다는 들은 이야기를 주로 쓴다. 귀라도 열려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솔직히 나는 열심히 쓰지도 않고 잘 쓰지도 못한다. 글쓰기에 일종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재능은 상위 0.0001% 재능이 아닌, 초등학교 때 글짓기상을 받은 그런 재능정도.
글을 쓰며 노력에 비해 많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게 호의를 가진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믿어주었고 글이든 말이든 목소릴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확실히 알게 된다. 나는 파도를 멈추지도 더 세게 치게도 못한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없다. 나는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를 정한다. 시선을 바다의 끝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다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파도밖에 보질 못한다.
파도는 파도일 뿐 바다를 움직이지 못한다. 파도는 그냥 파도이다. 바다가 있어야 존재하는 그냥 그런 것.
얼마 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그 중요도에 대해 체크를 하면서 하루동안 그런 일들을 위해 사용할 시간, 일주일 동안 사용할 시간, 한 달 동안 사용할 시간 같은 것들을 체크하면서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큰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도 있었지만 체크하다 보니 생각보다 별 일도 아니다.책 퇴고, 글로성장 부대표로서 할 일, 새로운 수업, 피드백, 강연, 인터뷰...
크게 힘들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최대한 멀리 바다 끝을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균형이 잡히고 파도 말고 바다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열심히보다 내가 나로서 똑바로 설 것.'
내가 잘 설 수 있는가는 열심히 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얼마나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가? 즉, 균형이다. 나 같은 균형이 없는 사람이 꼭 균형에 집착한다. 맞다. 그럼에도 항상 생각한다. 나 지금 여기서 두 손 놓고 잘 설 수 있는가? 한쪽으로 기울어도 넘어지지 않는가? 멀리 바라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