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내일 주말이니까 아침부터 엄마랑 놀자. 토끼한테 먹이 주러 가자. 거기 키즈카페도 있던데 거기도 가자. 아 점심도 같이 먹자. 그거 다하고 대신에 치과 가는 거야. 치과 가서는 씩씩하게 이 잘 뽑는 거야 알겠지. 파이팅! “
7살인 우리 첫째는 겁쟁이다. 4살 때부터 어린이집에서 어딘가에 놀러 가서 말을 타고 이런 사진에도 우리 아이만 타지 않았다. 실제 말 위에 올라탄 건 6세 사진에서부터. 다인이는 말 위에서 웃고 있었다.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사실 회전목마도 타지 못한다. 그 옆에 있는 마차는 타지만. 그래서 남편과 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모두 다인이가 어떻게 이를 뽑냐며, 마취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를 뽑으러 가는 당일까지도 다들 걱정이 아니라 믿지를 않으셨다.(?)
치과 이야기를 한 다음 날,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 놀아주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까르보나라스파게티를 먹고 동물원에서 먹이도 두 번이나 사서 토끼와 양, 그리고 햄스터에게 주었다. 뽀로로 음료수를 두 개 사서 처음 가보는 키즈카페에서도 한 참을 놀고 오락실에서 티니핑 카드도 하나 게임으로 획득했다. 즐겁게 그 시간을 즐겼다.
어느덧 4시가 되었다.
”다인아, 이제 우리는 집에 가서 조금 쉬었다가 치과에 갈 거야. 알겠지? “
치과에 도착한 둘째는 계속해서 언니는 할 수 있다며 응원해 주었고 나 역시 파이팅! 응 엄마 파이팅! 을 다인이와 한 열한 번쯤 주고받았다.
대망의 치과 치료.
"손 내리시고요. 네. 그냥 보기만 할 거고, 이 뽑기 전엔 말해줄 거야. 갑자기 뽑지 않을 거야. "
그러다가 의사는 정말로 친절히, 이제 뽑을 겁니다. 자, 금방 뽑을 거야. 툭!
0.5초 만에 이를 뽑았다. 텅 빈 이 자리보다 신기한 건 첫째의 반응이었다.
으어ㅣㅐㅕ제ㅕ
솜을 문채 뭐라 뭐라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자신감에 찬 눈빛이었다.
조금 있다가 수납할 때 내 옆으로 와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엄마 나 잘했지!"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다이소에 들러 퍼즐을 하나 사고 집으로 왔다.
그날 밤, 나는 첫째가 이렇게 커서 이도 씩씩하게 뽑고 내 말을 이렇게 잘 듣는다니 진짜 감개무량했다.. 아이의 당당한 태도가 그림같이 떠올랐다. 세상에. 이렇게 커서..
그리고 이틀 뒤, 귀 옆 상처 때문에 피부과를 갔다.
"한다인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아이는 의사와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 나를 부르고, 의사 선생님의 도구를 만지려고 했다.
"이거 만지면 안 돼 다인아. 선생님 거잖아. 그리고 엄마는 지금 다인이와 얘기할 수 없어. 선생님과 먼저 얘기 중이잖아. “
그렇지만 아이는 계속 방해했다. 엄마는 왜 서서 얘기해? 엄마도 앉아. 저 의자에 앉아봐.
"다인아, 엄마 선생님이랑 얘기 중이야."
"아니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엄마도 나처럼 의자에 앉으라고."
"엄마는 지금..."
"의자에 못 앉아? 근데 이건 뭐지? "
선생님 책상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상처를 좀 봅시다. 이쪽 귀?"
상처를 보는 것 역시 아이가 협조를 안 해줘서 잠시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무사히 진료를 마치고 주사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연고를 바르니 간호사가 빨간색 불을 켜주며 누워서 이걸 10분 쬐고 나오세요~라며 어떤 기계를 켜고 나갔다.
다인이에게 눈높이를 맞춰서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다인아, 오늘 왜 이래? 이 뽑을 때는 아주 잘했잖아. 이번에는 아픈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엄마 말 안 들어?"
"엄마가... 파이팅도 안 해줬잖아."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네. 진료를 받기 전 아이의 두려움은 피부과나 치과나 같았을 텐데. 내가 마음대로 판단 내리고 이건 별로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며 지레 짐작했네..
진료를 마치고 아이랑 집으로 다시 가는 길, 내가 요즘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집안일을 좀 더 잘해야지. 매일 해야 할 집안일과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 할 것, 계절마다 해야 할 집안일을 분리해서 표를 만들자, 아이들 영어학원은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피아노가 다니고 싶댔는데 다인이는. 아 맞다, 운동도 보내야 하는데. 계속 한글을 내가 못 가르쳐줘서 큰일이네.
그것들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게 파이팅이었던 걸까. 아이에게 다가가서 한번 더 얘기해 주었다.
"다인이 오늘 피부과 진료도 잘 받았어. 그렇지? 너무 자랑스러워. 우리 이제 매일 파이팅 하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