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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는 방법

by 김필영



아니다, 그곳에는 내가 없었다. 모든 장소를 떠올리면 그 장소에는 내가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냥 바다나 강물, 나무처럼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과거를 떠올릴 때면 산과 나무를 묘사하듯이 나에 대해 적을 수 있다. 어두컴컴하지만 알록달록했던 많은 곳들. 노래방, DVD방, 그리고 술집. 그리고 간판이 켜진 길거리.





무심한 듯 씩씩하게를 쓰면서 남과 여 OST, 러브레터 영화 OST, 바흐의 무반주 챌로, 히사이시조의 회전목마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 과거의 그때를 수없이 돌아갔다.

그럼에도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는 나를 벗어나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고 이야기 속의 인물은 어느새 글 안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내가 진짜로 슬퍼지는 순간은 내 감정이 느껴질 때가 아니라 그 장소, 혹은 공기, 풍경들 때문에. 파란 바다가, 검은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해가 뜨기 직전 푸르스름해질 때. 시간이 흘러가는 걸 바라만 볼 때. 그런 헛헛함을 느끼면 벽이 없는 너무 넓은 이상한 방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넓지만 갇힌 게 느껴지는 방.






며칠 전 첫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 갔다. 그날 편집자님과 식사를 하며 깨달았는데 내가 책을 낸 지 벌써 1년이 넘게 지났다. 게살이 올라간 덮밥을 먹고 편집자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얘기는 편집자님의 질문, 그리고 내 대답, 그리고 그의 대답 이런 식으로 흘렀다.





커피를 마시고 내가 요즘 하는 공부에 대해 말했다. 편집자에게 편집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이야기하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이야기를 끄덕이면서 들어주었다. 정말 아주아주 한심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렇게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오니 당연히 아직도 날이 밝았다. 햇빛이 가득한 낯선 거리를 걸었다. 걷다 보니 조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달에도 서울 일정이 있어요. 그때 또 밥 먹어요.”

“네. 작가님. 조심히 내려가시고요.”



그가 손을 흔들고 들어갔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거리에 내가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과거를 떠올릴 때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기대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제대로 써볼까.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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