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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한심한 여행일지

여행이라고 부르기도 뭣하지만

by 김필영



예전에는 집 근처 어딘가를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마주치는 것들은 대개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 자리에 늘 있는 돌, 혹은 신호등, 신호등을 건널 때 바닥에 그려진 하얀 줄, 빵 집의 간판, 계절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앞에 붙은 유리 광고. 지나가다가 꼭 마주치게 되는 늙은 할아버지들. 부지런하게 재활용을 싣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한 손에는 또다시 마실 술을 담아서 종종걸음으로 걷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들은 보통 양말, 바지 따위를 조금 설렁설렁 입고 있다.

(그 봉지를 확인한 적은 없지만 분명히 술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해가 조금씩 지는 주황빛 하늘. 이런 것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러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 길을 걷는다.

한 손에 막걸리를 들거나, 분리수거 리어카를 끄는 그들과 함께.






최근에는 다른 지역으로 많이 다니게 되었다. 강연이 있기도 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혼자 호캉스를 즐기기 위해 가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KTX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내 모습은 정말 비효율적이고 최악의 동선으로 진행이 된다. 누군가가 나의 여행을 카메라로 담는다면 아마도 한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일단 어딘가를 다닐 때마다 네이버 길 찾기를 통해 열심히 길을 찾아보지만 꼭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길을 물어본다. 서울서는 지하철을 탈 줄 몰라서 택시비를 엄청 쓰고 온다. 항상 시간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이 늦어진다. 그래서 업무상 일정일 때에는 하루 전날 반드시 간다. 가서 근처 호텔을 잡아놓고 최대한 변수를 줄이려고 한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인천을 갔는데 만나는 사람은 몸이 아픈 날이라 사실 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미 호텔 결제를 해놔서 안 가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약속 장소를 가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왔고 다음날 호텔 체크 아웃 때까지도 비가 너무 많이 왔다. 호텔 근처에 센트럴파크인가 큰 공원이 있었는데 그 공원을 꼭 걷고 싶었는데 걷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알고 보니. 여유분 옷도 실수로 챙기지 않은 것이다. 비를 많이 맞을 수 없었다.) 교보문고에 들렀지만 너무나 울산 교보문고와 비슷했다. 게다가 그곳에는 울산보다 앉을 의자가 더 없어서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책을 두세 권 사고 1층으로 올라와서 식당을 둘러보았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던 중 어떤 음식점을 발견했다. 아무도 없길래 조심스럽게 주문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퉁명스러웠다. 나는 마침 휴대폰 충전도 할 겸이었기에 충전을 할 수 있는 코드가 있는지 물었는데 내 질문을 들은 아르바이트생이 내 앞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없다고 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없다고 하라는 표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있는데 이 사람에게는 없다고 하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써야 하니, 혹은 직원이 써야 하니 없다고 하라고 하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뉘앙스가 그랬다는 거지 아무 생각이 그분은 없었을 수 있지만) 그 말을 곱씹으며 빵과 커피를 모두 먹었다.

버스 정류장이 멀어서 택시를 타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타려고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버스가 오기까지 30분이나 걸리는 게 아닌가.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무렵, 다시 시간을 계산해 보니 도무지 버스를 타서 될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뭘 했을까 하는 내 멍청함을 탓하고 택시를 잡고 택시비 3만 원을 썼다.

KTX를 타고 생각해 보니 인천까지 왔지만 특별히 한 게 없고 엉망진창 돈만 쓰고 온 하루였다. 보통 내 여행이 늘 그랬지만 말이다. 이럴 거면 그냥 당일치기로 왔더라면 몸이 좀 덜 힘들었을 텐데.




기차역에 도착하니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바보같이 묶은 딸 둘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엄마 오랜만이야!"

정말 나도 딱 그 심정이었다. 하루 떨어져 있었는데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과 인터스텔라를 보았다. 요즘 우주에 관심이 생긴 나를 위해 남편은 영화를 골라주고 우주 관련 유튜브도 찾아서 눈앞에 틀어준다.

아이들을 씻기고 남편도 모두 잠들었다.



다시 이번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식으로 나온 음식 중 연두부가 맛이 없었고, 룸서비스로 시킨 감자튀김은 맛이 괜찮았다. 원래 일정이었던 만남은 말할 것도 없이 즐거웠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돌아다니기가 힘들었다. 교보문고가 너무 울산과 같았고 그 음식점이 별로였다. 택시비를 너무 많이 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엉망진창 여행을 하고 난 날에는 꼭 글을 썼다. 꼭 어떤 생각이 들었고 꼭 무언가를 실행했다. 새로운 생각이 집에 오면 들었고 오래된 생각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여행의 목적은, 목적이 없는 게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매일 걷거나 매일 어디론가 떠난다면 바뀔 수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닐까. 정체된 무언가는 몸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흘러 지나가버린다.

두 번째 책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난 뒤, 20일 정도 나를 글 쓰지 못하게 막고 있던 것이 이번 인천 여행에서 흘러가버렸다. 그렇다. 택시비도 함께.


목적이 없고 쓸모가 없는 것은 늘 나를 나답게 만든다. 나를 나답고, 아주 풍요롭게.


아마도 나는 또 정신 차려 보면 걷고, 또 KTX안에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나는 또 헤매고

나는 또 늦고, 나는 또 몹시 몸이 피곤하겠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다녀오면 남는 장사라며 뿌듯해하며 글을 쓰겠지.




#여행

#글쓰기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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