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3일째.
오늘은 남편과 나와 시간이 좀 맞지 않는 날이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온 남편은 잠들고 내가 아이들 등원시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분을 걸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있으니 남편이 오후에 일어났다. 오후에 일어난 남편과 30분을 걸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이 계단을 왔다 갔다 뺑뺑이 하는 동안 나는 평지를 혼자 걸었다. 걷다가 보니 뜬금없이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어떤 연예인이 티브이에 나와서 장난스럽게 넌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니라고 이야기했던 그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어제 건강검진 결과에서 남편은 녹내장 의심, 콜레스테롤 수치 남들보다 2배, 간수치 2배, 고지혈증 의심, 비만이 나왔고 나는 동서동맥인가, 1분당 맥박이 60회 미만인 것과 골다공증 전 단계인 골감소증이 나왔다. 그렇다. 남편에 비해서는 내가 더 건강...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토록 내가 책임감 있게 일을 진행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동안 나는 내 몸에 책임감이 있었냐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 열심히가 정말 나를 위한 거였는지. 혹은 나를 위한 거였을지라도 몸을 챙기지 않은 거면 그 열심히가 나를 위한 거라고 한들 의미가 있는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남편은 정말 상냥하고 착하고 늘 나를 위해 주는 좋은 사람이다. 내게 글 쓸 시간, 작업할 시간을 준다. 회의가 밤늦게 자정 넘어 끝나더라도 불편한 기색 없이 웃어주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한들, 자신의 몸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책임해도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책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책임감 같은 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전전긍긍하면서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들. 살짝 떠올려보자면 그런 것들이 많아질수록,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내려고 할수록 제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책임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어디까지나 책임감은 스스로 가장 중요한 걸 알아야 그 부분에 가장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두려고 다짐할 때 내 안의 누군가가 속삭인다.
‘너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니?’
혹은 가까운 누군가도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이제는 그냥 넘길 줄 알게 되었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야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는 너 잘못된 거야라고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일은 힘들면 그만둘 수 있고 언제든 아니다 싶은 방향은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해놓은 것이 아까워서 다른 길로 가지 못하는 것이 정말 나 자신에게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다. 언제든 갑자기 내가 결심이 서면 아, 나 이 길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그 직업이, 그 단체가 꼭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만 빠져있을 필요는 없다.
이렇게 나처럼 생각하다가 보면 회사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계속 그만둘 수도 있다. 밥먹듯이.. 물론 그러면 안 되고..
걷다가 하루살이들을 쫓아내며 생각해 본다. 내가 정말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잘해야 하는 일은 뭐지? 내 중심이 바로 서려면 뭐부터 해야 할까.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저 멀리서 남편이 계단을 다 걷고 내려온다. 남편을 바라보니 그게 확실히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제 하려고 했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영상을 오늘 업로드했지만 조회수가 없어서 한참을 조회수 없음으로 떠있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그런데 구독자가 없지만 어떻게 몇 시간 동안 조회수가 0일 수가 있어요?”
“원래 그래요.”
남편은 내가 조회수가 0인 게 기분이 좋은 건지 싱글벙글이었다. 영상을 하나 올리고 나니 궁금증이 몇 개 더 생겼다.
궁금증 모음
하이라이트는 앞으로 어떻게 당기는 건가? 복사 후 붙이기를 하면 될까?
오프닝에 피아노 반주 같은 걸 넣고 싶은데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 피아노 소리는 어디서 구할까?
인트로를 만들고 싶지만 어려워 보인다.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유튜브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나무를 바라보고 꽃을 바라본다. 매미소리를 듣고 하루살이가 얼굴에 왔다 갔다 하는 걸 손으로 치우며 걷는다. 책임감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지금을 본다. 지금은 지금이고 조금 있다가는 조금 있다가의 일이다. 내일이 되면 내일이 현재가 되고 현재가 금방 과거가 된다. 시간은 없고 지금 현재에서 현실에 머무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금방 전전긍긍하게 된다. 혹은 나를 미워하게 되거나.
기억해야 할 일
첫째 아이가 내게 (밀짚모자를 쓴 나를 보고) 블루베리를 따는 할머니처럼 예쁘다고 말한 것.
오후 할 일
저녁 9시 30분 컨설팅. 그 사람의 글이 좀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 딱 맞는 설루션을 주려고 노력할 것. 아이들에게 열두 번 정도는 마음을 담아 웃어줄 것. 책을 읽고 책 읽는 것을 영상으로도 담아볼 것.
..
어제는 설거지와 집을 치웠지만 빨래 개키기와 분리수거를 못했다. 집안일은 왜 이렇게 많고도 어려운가?
유튜브를 하려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콘텐츠화시키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의식에 흐름대로 흘러가는 산책(운동) 일지.
내일의 나는 어떤 단어를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