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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Aug 04. 2023

어떻게 7년동안 남편과 싸우지 않았을까

에라 모르겠다 같은

      

 야구게임을 하는 남편에게 또 슬금슬금 다가갔다.     

 “남편, 저 유튜브 콘텐츠, 글쓰기 말고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는 영상으로 할까요? 우리 7년 동안 한 번도 안 싸웠잖아요. 그런 것도 주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럼.”


그런데 아마 그런 영상을 올리면 내 전 남자 친구들의 악플이 달릴 확률이 높다. 아니 나랑은 많이 싸웠는데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한 둘이 아니니까.. 뭐 그렇다.     





나는 이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주위에 정신, 심리 관련 공부를 하는 사람이 많아서 나에게 7년 동안 싸우지 않은 건 문제가 있는 거라고 했다. 너무 무신경해서 싸우지 않은 거고 자주 싸워야 좋은 거라고 했다. 그렇게 서서히 맞춰가는 게 제일 좋다고. 보통 결혼하고 3년간 많이 싸우지만 그 뒤로는 잘 싸우지 않는다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싸우지 않지만 지금 남편과 나의 사이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남편 쪽은 아닐 수도 있다.)     





과거 나는 많은 싸움을 했다. 말싸움이지만 1명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나는 난생처음 내게 파이터 기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로 심한 말을 하며 말싸움을 했다. 하찮은 일로 싸움을 반복하다가,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은 좀 믿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싸움을 다 기억하게 되었다. 모진 말들은 흘러가지 못하고 관계에 계속 불순물처럼 끼었다. 그래서 그 관계는, 뗐다 붙인 스티커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싸우고 다시 만난 관계는 묘하게 공기가 다르고 말투가 다르고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그 신기한 경험을 몇 번 하는 사이 뭐 다른 것들은 다 괜찮았지만 내가 상처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약속을 어기고,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알고 봤더니 바람을 피우고, 알고 봤더니 나를 속이고 있고. 그런 일이 아니라면 싸울 만큼 큰 일은 내게 없다.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는 것은 남편보다 내가 더 심하고, 집을 치우지 않는 것도 내가 더 심하다. 나는 정말 더럽고 정리정돈을 심각하게 못한다. 하루하루 어떻게 남편은 나 같은 사람과 함께 살까?를 생각할 만큼.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나는 정말 놀랍게도, 놀라울 만큼 엉망진창이다. 도대체 그렇게 스스로 느낀다면 더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집안일에서 만큼은, 엄마라는 역할에서만큼은 그게 쉽지 않다.       

책을 읽고 싶다. 수업을 하고 싶다. 관련된 일을 하루종일 하는 게 즐겁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사실 몹시 즐거운 일이다. 하기만 하면 다 내 거다. 글을 써도 그 글은 내 글이고 영상을 만들어도 내 영상이고.. 게다가 1년 사이 수익도 어느 정도는 되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무리해서 하다 보니 일요일아침 교회를 가는 게 너무나 힘들고 집을 치울 힘이 없다. 아이들 동화책을 읽어줄 힘이 없고 씻길 힘도 없다. 내 모든 에너지는 다 그쪽으로 간다. 아, 그런데 어떡한담. 그런 게 너무 재밌는데..     

진짜 꼴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고 싶다. 와, 정말 아직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이러다가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꼴통 호호 할머니가 될 것 같다.      

우리 남편은 결국 꼴통 호호할머니가 된 나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내 방에서 라면을 부셔먹으며 타자를 치고 있고 남편은 거실에서 야구게임을 하고 있다. 무신경하다. 그런데 참, 둘 다 무신경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AI라도 말로 상처를 주지 않는 남편에게 고맙다.      

나와 살아주는 것도 고맙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를 이해해 주는 것도 고맙다. 7년 동안 우리가 싸우지 않은 이유는 역시 내가 너무 꼴통이어서, 그리고 내가 그걸 알아서. 남편이 그걸 이해해 주어서. 정도가 아닐까.      




앞으로는 좀 더 균형 잡힌 삶을 살아보리라 결심해 본다. 그러나 역시나 오늘 링거를 맞고 감기약을 먹고도 책상 앞에서 책도 읽도 글도 쓰면서 뽀작뽀작 거리고 있는 나. 최근에 읽고 있는 스토리 설계자라는 책은 너무 재밌다. 유튜브 영상 만든답시고 유튜브 영상 잘 만드는 법 유튜브를 몇 개 보는데 너무 재밌다. 직접 만드는 것도 너무 재밌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되려나. 뭐가 문제지?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게 너무 재밌다. (조회수가 아직 10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런데 점심고민, 저녁 고민, 집에 어떤 게 필요하고 필요 없는가, 생필품을 주문하는 일은 재미가 없고, 오늘 산 문구류를 사용할 생각에 설렌다..


정말, 어쩔 수 없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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