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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13. 2024

조선일보에서 걸려온 전화

작가님 이번 주 연재 글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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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재 제출을 하기 전 주말, 나는 바다에 있었다. 바다에서 빨갛게 턴 손을 가지고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방에는 일주일 치 신문을 챙겨서. 그때 마침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일요일에 기자님이 연락이 오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아니 없다고 봐야 한다. 원고로 만나고 카톡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데 전화라니.      

전화를 받기 전부터 무슨 일인지 직감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네, 그 연재 때문에 연락을 드렸는데요.”     


꼴깍 침을 삼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진행하고 있는 신문 읽으실래요 코너를 당장 내일모레부터 세명에서 운영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말은, 이제 연재는 끝이라는 말이었는데. 세명에서 쓰라니.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게다가 전화를 주신 기자님은 정말 너무나 친절하셨고, 따뜻하셨다.  마음에는 감사가 일렁이고, 다시 눈은 노을을 응시한 채, 폭신폭신 발이 빠지는 모래를 걸으며, 알겠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 뒤 딱딱한 길을 걸으며 집으로 갔다.           








결국 나는 연재를 세명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내가 나왔던 지면에 이제는 예쁘고, 똑똑하고, 글도 잘 쓰는 아나운서의 글이 수요일에 나왔다. 나는 그 글을 보면서 그 글이 조금 부럽기도 하고, 내 글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봤을 때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고 늘 말하던 강의할 때 내가 떠올랐다. 웃음이 났다. 막상 나 자신은 색깔이 강한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는 대외적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예쁜 글을 쓰라고 했던 게.      






생각해 보면 한 번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고, 인간관계에 애써 다가가지도 않았다. 먼저 친해질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히 모두가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글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내 글이 그런 글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사실 그런 노력도 덜 했음을.     

그럼에도 이번 연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몇몇은 끝난 줄 알았는지 내게, 내 신문 칼럼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해서 카톡을 보내왔다. 작가님 글은 따뜻해요. 작가님 글은 읽기가 편했어요. 작가님 글은 뭔가 저에게 늘 힘을 줬어요. 그런 글을 읽으면서 아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굳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도 없고, 내 글이 대단한 곳에 올라가거나 꼭 활자로 찍혀서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누군가가 읽고 감동을 받았다면 누워있던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었다면, 누군가가 신문구독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내가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된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하고 이제는 다른 사람이 채운 내 지면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나보다 좋은 얼굴, 좋은 직업, 좋은 글을 바라보았다. 그냥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나는 초등학교 때에는 미술과 음악을 못했고, 중학교 때에는 방석 만들기 및 각종 실습을 다 못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못했다. 전교 석차가 400명 중 380등 정도였으니 정말로 전교에서 꼴찌라고 봐야 된다. 그래서 좋은 대학도 가지 못했고, 좋은 곳에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내 강의에 녹이고, 내 글에 녹인다. 나의 못함, 자책, 실수, 실패 이런 모든 것들을 글에 녹이는 일을 한다. 그러니 당연히 많은 부분에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따뜻한 글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예전 편집자가 나를 소개하는 글에서 그의 세계는 다른 에세이 작가처럼 우아하지 않다고 적었던 문구가 있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내 일상은 아름답지 않고, 내 글은 우아하지 않다. 예쁘지도 않고 힐링할만한 느낌도 없다. 그럼에도 따뜻한 글이라는 해주는 독자를 만나면 어쩔 줄을 모르는 기분이 된다. 낙엽처럼 내 글은 바사삭, 허공에 부서지는 그런 글인데.      

연재는 6주가 지나고 내 차례가 올 것이다. 나는 예쁘고 좋은 글을 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좀 더 나답게, 식탁의자에 겉옷을 휙 걸쳐놓듯이 글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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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런 저의 글을 잘 읽어주시고 잘 읽었다고 우쭈쭈 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카톡과 이런저런 메시지들도 모두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에서 저를 대신해서 이제 함께 칼럼을 연재할 두 칼럼 역시 많이 사랑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아직 지면이 남아있고, 그 지면은 아직 제 자리이니 저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까지는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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